기업임원 연봉 제한, 스위스 국민 68% 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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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기업 임원 연봉을 주주들이 결정하게 하자는 청원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한 3일(현지시간) 이 안을 주도한 토마스 마인더 의원(오른쪽)이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청원안은 경영진의 영입 또는 퇴직 때 이사회에서 보너스 지급을 결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샤프하우젠 로이터=뉴시스]

유럽에서 고소득층의 수입을 억제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스위스에선 기업 경영진의 보수를 제한하는 제도가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유럽의회는 최근 은행 직원들이 받는 보너스의 한도를 정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프랑스에선 지난해 연간 100만 유로(14억4000만원) 이상의 소득자에게 75%의 소득세율을 부과하는 법을 만들었다.

 스위스는 3일 기업 임원의 연봉을 주주들이 결정하자는 국회의원의 제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약 68%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직접민주주의를 고수하는 스위스에선 10만 명 이상이 서명한 청원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1년에 최대 4회까지 투표를 치른다.

 청원안에는 경영진의 영입 또는 퇴직 때 이사회에서 보너스 지급을 결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최근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경영진의 퇴사 때 거액의 보너스를 주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청원안에는 강력한 벌칙 조항이 들어 있다. 주주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임원 연봉을 결정하면 최고경영자(CEO)가 그 액수의 6배에 해당하는 벌금 또는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이번 국민투표는 치약회사 ‘트라이볼’을 경영하는 국회의원 토마스 마인더(53)가 이끌었다. 그는 기업 연봉 제한 운동을 벌이며 시민들의 서명을 받았다. 트라이볼은 2년 전 스위스 항공회사인 스위스에어가 경영난을 이유로 납품 계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부도 위기에 몰렸다. 당시 마인더는 스위스에어의 경영진이 회사 실적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보수를 받는 것에 분개해 이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현지 언론에 “국민투표 통과는 당연한 결과다. 기업 임원들에게 국민들이 보낸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다”라고 말했다.

 유럽의회에서는 1일 은행들의 보너스를 최대 연봉의 두 배까지로 제한키로 합의했다. 곧 구체적인 법안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프랑스에선 ‘75% 소득세율’ 제도를 정비하는 중이다. 이는 지난해 시행 직전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다. 다른 소득세율은 가구별 소득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 소득세만 개인별로 부과된다는 이유였다. 프랑스 정부는 부부 합산 소득이 연간 200만 유로 이상인 가구에 대해 65%가량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새 법안을 만들고 있다.

 유럽에서 고소득층의 수입을 제한하는 제도가 잇따라 도입되는 것은 빈부격차가 점점 벌어져 사회적 갈등 요소로 등장한 데서 비롯됐다. 기업이나 은행의 실적은 나쁜데도 임원들의 보수는 점점 올라가는 현상도 문제가 됐다. 스위스의 국민투표 전에 기업들은 “임원 연봉과 보너스를 제한하면 해외에서 우수한 인재를 영입할 수 없어 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된다”며 반대운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행동주의 주주’라는 시민운동 단체를 만들어 마인더와 함께 청원 작업을 해온 브리기타 모제르 하르데는 “경영진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가 기업과 사회에 해악이 된 지 오래”라고 반박했다.

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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