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만에 공식일정 없이 하루 보낸 박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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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8일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일정이 없었다. 취임한 지 나흘 만이다. 대통령 일정은 자체가 정치적인 상징이다. 일정에 국정 우선순위가 매겨지고, 대통령의 뜻이 담긴다. 박 대통령은 주말인 2~3일에도 공식 일정을 잡지 않을 방침이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28일에 왜 일정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가를 책임지시는 분이 외부에만 나가겠느냐”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외부인과 만나는 공식 일정만 없었을 뿐 허태열 비서실장과 일부 수석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조직법 개편안의 표류로 국정 공백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공식 일정이 없다”고 발표한 데 대해선 뒷말이 많다. 당장 야당에선 정부조직법 처리 압박을 위해 ‘시위’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통합당 박범계 의원은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이견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종의 침묵 시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휴가 외에 국민에게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으로서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설훈 의원은 “정신없을 정도로 업무가 집중된 정권 초기에 일정을 잡지 않았다는 것은 몸이 아파서 눕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취임 4일 만에 공식 일정 없이 생각에 들어간 모습은 자칫 국민에게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김용철 부산대 정치학 교수)는 우려가 나왔다.

 정상적인 정부 출범이 지연되면서 청와대도 어수선하다. 민정비서관 인선을 놓고 권력암투설이 제기돼 뒤숭숭한 가운데 출범 나흘이 지나도록 조직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있다. 비서관 인선은 물론 실무 인력인 행정관 채우기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특히 27일에는 ‘큰 청와대’라는 비판을 의식해 비서실별로 전체 인원의 10%씩 줄이라는 방침이 내려져 일선 실무진 사이에서 “무조건 줄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청와대 조직이 너무 커지면 안 되기 때문에 비서실별로 인원을 10%씩 줄이라는 방침이 정해졌다”며 “비서관들이 각 분야에서 20년 넘게 경력을 가진 전문가로 채워지는 만큼 비서관 밑에서 일하는 수족(手足)이 적어도 일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감축 방안은 최근 비서관 인선이 진행되면서 대통령직인수위가 당초 밝혔던 청와대 규모에 비해 점차 커지는 상황에서 나왔다. 인수위의 청와대 개편안은 이명박 정부의 ‘2실·9수석·6기획관·45비서관’을 ‘2실·9수석·34비서관’으로 축소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조직과 자리가 불어났다. 차관급이었던 경호처를 장관급의 경호실로 격상시키면서 ‘실’이 1개 더 늘었고, 제1·2부속비서관, 국가안보실의 국제협력·위기관리·정보융합비서관 등 ‘비서관’ 자리가 6개나 많아졌다. 대변인도 두 명이 됐다. 당초 발표된 ‘2실·9수석·34비서관’이 아닌 최소 ‘3실·9수석·40비서관’ 이상의 형태가 될 것이란 얘기다. 이 때문에 “‘작은 청와대’가 아닌 ‘도로 큰 청와대’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늘어난 몸통 대신 수족을 줄이는 방침이 내려오자 일선 실무진이 반발하고 있다. 한 행정관급 인사는 “큰 청와대라고 하는데 누구랑 비교해서 큰 청와대라는 거냐. 전 정부에 비해선 작은 규모”라고 반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하려면 실제로 뛰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건데 일률적으로 줄이라면 되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일부 비서실에선 허태열 비서실장 등 윗선에 “최소한 이명박 정부 때만큼의 TO(인원 편성)는 줘야 일을 할 수 있다”며 건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신용호·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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