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현직 검찰총장을 청문회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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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지난 8일 김각영(金珏泳)검찰총장의 거취와 관련해 "정치적으로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 한 임기를 존중할 것"이라고 이낙연(李洛淵)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지난 18일 TV 토론에서도 盧당선자는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소신 수사를 강조하며 "검찰총장의 임기를 법대로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22일 고건 총리지명자의 인준과 관련해 협조를 구하려고 한나라당 당사를 방문한 盧당선자는 다른 말을 했다. "검찰총장 문제는 법 정신에 입각하면 임기를 보장해야 하지만 새 정권이 출범할 때는 새로운 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기 중이라도 정치권이 정해준 대로 청문회에 세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나라당 박종희(朴鍾熙)대변인이 전한 내용이다.

이낙연 대변인도 "현 검찰총장에 대해서도 국회가 요구하면 청문회를 하겠다는 뜻"이라고 확인했다.

이미 임명된 임기제 공직자를 추후 마련된 법률이나 국회의 합의에 따라 소급해 인사청문회에 세우는 것은 법적 타당성이 결여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 고위 관계자도 "소급 인사청문회를 하자는 것이냐"며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국회법 제46조 3항을 보면 인사청문회 대상은 헌법에 의해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요한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감사원장.대법관, 그리고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이다.

위헌 시비 때문에 국정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경찰청장 등 '빅4'에 대한 청문회도 인준 표결 없이 청문회만 실시키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직 검찰총장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할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때문에 "盧당선자가 총장을 바꾸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는 박종희 대변인의 설명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새 인물을 임명하고 싶지만 스스로 법에 규정된 임기를 단축하기 어려워 편법을 쓰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민주당 일각에서 "검찰총장이 스스로 재신임을 물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추측을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흔들어대는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盧당선자가 강조하는 '소신 수사'를 지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성탁 정치부 기자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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