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전문가는 오락프로 왜 나갈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오락프로라고 해서 연예인만 나오란 법은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출연해 시청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다.

일반인뿐 아니라 요즘은 각 분야의 이른바 전문가들이 오락프로에 대거 등장하고 있다. 한때 교양프로에 자주 얼굴을 내민 전문가 중에는 나중에 정치의 길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TV를 징검다리로 삼은 경우다. 오락프로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과연 어디로 갈지 궁금해진다.

과거 '유쾌한 응접실'같은 라디오 오락프로에는 무슨 무슨 박사님들이 많이 출연했다. 진짜 박사도 있고 재치문답을 잘하는 명예박사도 있었다.

아폴로 박사로 유명해진 조경철 박사가 한때 TV 오락프로에 자주 등장한 적이 있다. 과학의 생활화라는 명분으로 출발했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은 면이 더 강했다.

얼마 지나서 선거 포스터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안쓰러워 보였다. 양심 냉장고를 주던 오락프로에 서반아어 전공의 민용태 교수가 거의 고정으로 출연했던 적이 있다.

어느 날 헐레벌떡 등장한 민교수에게 개그맨 이경규가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교수 맞습니까?" 방청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유머의 정체는 복합적이다.

지난 토요일 새롭게 시작한 MBC 주말 버라이어티 '꿈꾸는 TV 특별기획 너 자신을 알라'에는 무려 3명의 전문가가 등장했다. 정신과 전문의 표진인, 한의사 김소형,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등이 그들이다. 이미 다른 오락프로에서 그 진가(?)를 검증 받은 인물들이다.

그 전날 방송된 SBS '신동엽 남희석의 맨II맨'에는 이경재 박사가 사상의학까지 동원해 연예인의 친모를 찾는 게임을 벌였다. 한의사인 그는 출연한 연예인에게 침을 놓기까지 했다.

문제점은 두 가지다. 전문가가 전문성을 활용해 시청자에게 지식이나 상식을 쉽게 알려 주어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는 일이 잦다. 그들 역시 '연예인화'한다는 사실이다.

탤개맨(탤런트+개그맨)에 이어 전개맨(전문가+개그맨)이라는 말이 곧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방송에 출연해 개그맨 못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는 걸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돼서는 안된다. 둘째는 공정성 문제다. 한번 방송에 출연하면 덤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는데 그 전문가의 캐스팅 과정이 얼마나 투명했는지 궁금하다. ('러브 하우스'와 '건강보감'에 나왔던 건축가와 한의사는 CF에도 등장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가는 까닭도 있는데 전문가가 오락프로에 출연하는 이유가 없을 리 만무하다. 그들은 그 분야에서 "왜 저러지"하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런 따돌림(?)을 견디며 출연을 고수하는 데는 확고한 철학이 있을 터이다.

재미도 주고 정보도 준다는 제작진의 전술에 동의해 기꺼이 '전개맨'이 되겠다면 그것도 새로운 영토 개척이다. 이제는 시청자가 생각할 차례다. 어찌 보면 꿩도 먹고 알도 먹는 것 같지만 그저 받아만 먹지 말고 한번쯤 꿩과 알의 출처와 용도를 짚고 넘어갈 때가 됐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