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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새로운 '빅뱅' 간호인력개편의 진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간호인력의 대대적인 개편방안이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간호조무사제도를 폐지하고 이들을 실무간호사로 편입하는 간호사-1급실무간호인력-2급실무간호인력 3단계 개편안에 대한 방향이 발표되자 간호계는 혼란에 빠졌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를 비롯해 차기 복지부장관 홈페이지, 포털사이트 토론게시판 등에는 이번 개편안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질적 수준이 낮은 간호서비스를 제공해 국민건강을 위협한다는 주장과 간호인력의 재정비로 더 나은 간호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란 주장이 맞선다. 간호인력개편을 둘러 싼 간호계와 정부, 의료계, 국민의 시선을 짚어봤다.

3단계 간호인력 개편, 경력쌓은 간호조무사에 간호사 응시자격 부여

보건복지부는 지난 14일 보건의료직능발전위원회(위원장 송진현) 4차 회의에서 간호인력 3단계 개편방향을 발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간호사-간호조무사'로 나뉜 현재의 제도를 폐지하고 간호인력을 3단계로 개편한다. 명칭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간호사-1급 실무간호인력-2급 실무간호인력'으로 잠정 확정했다. 인력양성 방안 중 하나로 교육과 경력에 따라 상위 간호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설계했다. 즉 일정 기간 경력을 갖추고 교육을 이수한 실무간호인력에게 간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간호사는 대학 4년의 교육과 실습을 받은 자, 1급 실무간호인력은 대학 2년의 교육과 실습을 받은 자로 정했다. 2급 실무간호인력은 간호특성화 고등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자 중 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교육기관에서 소정의 교육을 마친 자로 정의한다. 전 간호인력 교육 양성과정에는 평가인증 시스템을 운영한다.

업무 범위는 간호사의 경우 독립적 간호업무와 의사의 지도감독 하에 진료보조 업무로 명시했다. 1급 실무간호인력은 간호사의 지도감독 하에 간호보조업무를, 의사와 의사의 위임을 받은 간호사의 지도감독 하에 진료보조업무를 담당한다. 다만 의원급에서는 독립적 간호업무와 의사의 지도감독 하에 진료보조 업무를 담당한다. 2급 실무간호인력은 1급 실무간호인력의 업무와 더불어 의원급의 경우 1급 실무간호인력의 지도감독하에 간호보조 업무를 할 수 있다. 다만 지도감독 하에서도 위임이 불가능한 업무는 별도로 명시하기로 했다.

개편안 발표되기까지의 배경

▲ [사진 중앙포토]

그간 의료현장에서는 간호인력이 부족하고 그에 따른 업무부담이 가중된다는 목소리가 늘 제기됐다. 수도권의 대학병원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지방 중소병원에서 간호사 구인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관련단체 간 이견이 커 이렇다 할 대안이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중소병원들은 “간호사를 구할 수 없는데 간호사 수가 많을수록 수가를 올려주는 간호 등급제가 시행되면서 큰 병원만 이익을 보고 간호사 임금은 계속 오른다”며 “간호조무사 인력을 등급제에 포함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간호계에서는 “적정임금과 처우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9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유휴 간호인력을 현장에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책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전문대학이 간호조무사 양성에 뛰어들며 보건간호조무전공을 개설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특성화 고등학교와 학원에서 배출됐던 조무사 양성과정에 대학교육 과정이 생긴 것이다. 과 개설 당시 국제대학은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고 조무과를 개설했다. 그러나 이후 복지부는 국제대 간호조무과 졸업자에 대해 조무사 응시자격을 부여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렸다. 이후 간호협회는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을 명확히 해줄 것을 복지부에 요청했다.

당시 간협은 대학 내 조무과 개설을 두고 "고등학교와 학원의 교육과정을 대학에서 그대로 적용해 동일한 자격증을 부여한다면 대학과 고등학교, 대학과 학원의 차이가 무엇이냐"며 “간호조무사 자격은 고등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거의 무료로 취득할 수 있는 자격임에도 수천만 원의 등록금을 주고 대학에서 취득케 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복지부는 간호조무사 양성기관을 특성화고나 학원으로 제한하는 규칙 개정안을 마련하고 입법예고를 했다. 규제개혁위원회는 법안을 심사하며 복지부에 간호인력 개편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규개위는 간호인력 개편안 마련을 전제로 개정안을 오는 2017년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즉 2017년까지 복지부는 간호인력 개편안을 마련하도록 하고 그때까지만 대학의 조무과 개설을 막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해 8월, 양승조 의원은 간호조무사의 명칭을 간호실무사로 바꾸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보건복지부 장관 면허'로 변경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도 등 자치단체에서 관리해온 조무사 자격증을 의사나 약사, 간호사처럼 복지부에서 관리토록 하는 것이다. 이 개정안을 두고 간협은 “의료인 면허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복지부는 규개위의 요청에 따라 ‘장기 간호인력 개편방안 마련을 위한 TF’를 구성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TF에서 현행 간호인력 제도의 문제점과 선진 외국 간호제도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며 “그 결과 현 간호조무사 제도는 폐지하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로 나눠져 별개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간호인력을 하나의 체계 내에서 3단계로 개편하는 안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호협회, “찬성한 적 없어, 전면 재검토 피력했다”

간호협회는 ‘장기 간호인력 개편방안 마련을 위한 TF’의 논의 결과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간협 성명숙 회장은 “간호인력을 3단계로 재구성하는 안은 전면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며 “그런데 복지부가 개편내용을 갑자기 발표해 당황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간호인력을 장기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간호교육 4년 일원화를 이뤄낸 상황에서 2년제 간호사 교육과정을 또 다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국민들이 안전하고 질 높은 간호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간호교육을 4년제로 일원화 시켰는데 이 상태에서 다시 2년제 간호사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개편안이 지방 중소병원의 간호사 부족문제를 조무사를 통해 해결하려는 행태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간호사들이 중소병원을 외면하는 건 임금이 낮고 근무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므로 이를 개선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며 “경력에 따라 간호사 응시자격을 주겠다는 것 역시 의료인 면허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사태를 초래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간협은 간호사에 의해 간호보조인력이 지도-감독되고, 간호보조인력과의 상생과 협력이라는 대전제 아래 간호인력 개편방향에 대해 대안방안을 강구 할 계획이다.

간호사들, “PA에 의사면허증 줄거냐” 성토

현직 간호사와 간호대생들은 복지부 홈페이지와 진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 홈페이지에 개정안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3년동안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간호대학에 입학해 국가고시를 거쳐 신규간호사가 됐다는 A씨는 "간호 교육을 받아보니 조무사로 근무할 때 했던 업무만이 전부가 아니었다"며 "왜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른 채 기계처럼 늘 하던 일에 대해 비로소 학교에 와서야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경험만이 대신할 수 있다는 건 편협한 생각이다. 간호학은 생각보다 방대하다"며 "대학과정을 밟을 수 있는 길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런 식으로 대우한다는 건 현직 간호사와 전국 간호대생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간호사는 "병원들이 어떻게 하면 간호사를 안 뽑고 임금이 싼 조무사로 대체할까 몰두하고 연구하는 판국에 4년 동안 힘들게 공부한 간호사만 모두 실업자 신세가 될 것"이라며 "의사만을 위한 간호인력개편안"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 외에도 ‘국민에게 질 높은 간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제도’, ‘병원에서 PA(의사보조인력)로 일하는 간호사들도 경력이 쌓이면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자격을 주겠다는거냐’는 등의 반대의견이 봇물을 이뤘다.

간호조무사협, 내심 방그레…회원에 단합 호소

이번 개편방향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건 간호조무사다. 개편안대로 시행되면 간호조무사들은 그간 경력을 인정받고 일정기간 교육을 이수해 간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대학교육 과정을 거치고, 명칭이 실무 간호인력으로 변경되면 간호 인력으로서 위상도 강화된다.

복지부의 개편안 발표이후 간협이 개편안의 부당함을 강력히 피력하고 나섰지만 조무사협회는 공식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다만 조용히 회원들의 단합을 독려하는 상황이다.

협회 관계자는 “개편안 발표 이후 간호사들의 반대가 계속되고 있다. 협회로서 이번 개편안의 방향에 대해 입장 발표를 하려고 했지만 발표가 오히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갈등을 심화할까 우려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협회는 회원들에게 서신문을 발송하고 단합을 호소하며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강순심 회장은 “간협과 미국․일본 전문가, 의학회 등이 간호인력개편 TF에 참여해 의료선진국의 간호인력 현황을 파악하고 결과가 도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체 간호인력 23만 600여명 중 간호조무사 인력이 절반에 이르고, 노인요양기관과 산후조리원 등 일선현장의 조무사들까지 포함하면 18만여 명에 달한다”며 “정부가 그간 사실상 방치해 온 간호조무사 직종을 개편해 간호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간호조무사의 양성에서부터 자격 후 취득까지 관리를 강화함으로써 간호서비스의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간호사들이 간호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제도라든가 고졸 출신의 간호사가 생기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환자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나라 간호 인력의 50%가 간호조무사들인 상황에서 일부 간호사들의 바대는 명분 없는 반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강 회장은 “이번 개편안이 시행되면 간호사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간호업무에 집중하는 간호팀의 리더로서 위상이 정립되고 간호조무사 입장에서도 전문간호인력으로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캐나다-미국 간호사제도 들여다보니...

외국의 간호사제도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자료를 입수해 분석해봤다. 이번 복지부 개편안의 근거가 된 캐나다와 미국의 간호제도를 살펴보면 이들은 간호조무사(Nursd Aide)-실무면허간호사(Licensed Practical Nurse)-간호사(Registered Nurse)로 구분되는 3단계 체계를 활용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의 간호조무사는 주 업무가 단순 환자케어다. 환자 목욕시키기나 식사 챙기기, 투약 보조 등의 업무다. 이들의 교육기간은 3~7개월, 교육 시간은 약 300~600시간이다. 실무면허간호사(LPN)는 간호보조와 진료보조의 업무를 담당한다. 교육기간은 1~2년이며 교육시간은 1100~2000시간이다. 이들은 환자의 바이탈 체크와 드레싱, 감염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간호조무사협회는 이같은 선진국의 사례를 들며 “한국의 간호조무사는 외국의 실무면허간호사와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는데도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캐나다와 미국처럼 3단계 간호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간호협회는 “미국의 LPN은 이미 안전성과 효율성에 대해 국민들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실패한 제도를 받아들여 우리나라에서 새로 시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복지부, 2018년에 새로운 간호인력 체계 적용하도록 할 것

복지부는 2018년까지 새로운 간호인력 체계를 적용하도록 구체적인 시행을 위한 연구용역과 법개정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개편방향의 기본원칙은 간호 인력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되 전문적 교육 수준에 따라 면허를 부여하고 경력과 추가 교육에 따라 경력 상승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개편의 목적과 관련해서는 “노인인구가 늘고 만성질환이 확대되면서 의료수요가 변화하는 가운데 효율적이고 질 높은 간호서비스 제공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편안이 시행되면 병원에서 간호사와 실무간호인력으로 구성된 ‘간호팀’이 적절한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환자에게 필요한 간호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봤다. 또 간호인력의 양성과정과 자격 관리를 강화해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원급 의료기관과, 점차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요양병원에도 양질의 간호인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기대다.

복지부는 올해 의료기관에서 간호인력의 역할과 양성과정, 자격관리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개편방향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이어 법령 개정 등 필요한 절차를 마련하고 2018년부터 새로운 간호인력 체계가 적용되도록 속도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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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기자 tia@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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