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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 사면” 한마디에 이탈리아 총선 요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탈세자들을 전면 사면하고 재산세를 즉각 폐지하겠다.” 정치를 재개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6) 전 총리가 내건 포퓰리즘성 공약이 이탈리아 총선(24~25일) 판을 뒤흔들고 있다. 줄곧 3위에 처져 있던 베를루스코니의 중도좌파 자유국민당은 탈세자 사면과 세금감면 공약을 내세워 선두 중도좌파 민주당을 5%포인트 차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자영업자가 500만 명이나 되는 이탈리아에서 탈세는 고질병처럼 여겨지고 있다. 탈세액은 매년 1200억 유로(약 17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디어 그룹을 거느린 베를루스코니 자신도 탈세 혐의로 지난해 10월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항소 재판을 진행 중이다. 이탈리아인들이 스위스 은행 계좌에 도피해 놓은 돈이 1000억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루이스대 리비아 살비니(세법) 교수는 “납부하는 세금이 많은 데 비해 공공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낮고 부패한 정치권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이 탈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탈리아 납세자들의 세금부담은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4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총 부채는 2조 유로로 국내총생산(GDP)의 126%나 된다.

 베를루스코니는 또 세금 감면에 승부를 걸고 있다. 그는 “집은 성스러운 곳이다. 세금을 물려서는 안 된다”고 연일 TV와 라디오 연설에서 주장한다. 주택 가격의 0.4%를 내는 IMU 재산세는 2011년 베를루스코니로부터 정권을 인계받은 마리오 몬티 총리의 과도정부가 재정 확충을 위해 도입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앞으로 이를 폐지할 뿐만 아니라 지난해 낸 세금도 모두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쫓기고 있는 민주당과 몬티 전 총리의 중도연합은 베를루스코니의 공약이 탈세를 조장한다고 비난하면서도 세금감면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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