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주식, 그레이트 로테이션 아직 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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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연초 한국 증시는 다소 부진하지만, 바다 건너 세계 증시는 파티 분위기다. 지난해 13% 상승한 세계 주가는 올해도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미국 다우지수는 심리적 저항선인 1만4000 선을 넘나들며 2007년 10월 세웠던 사상 최고치(1만4164)에 근접하고 있다. 월가의 금융전문지 배런스는 ‘다우의 사상 최고치를 준비하라’는 표지 기사를 싣기도 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주가도 5년래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이유가 없지는 않다. 지난해 세계 증시를 억눌렀던 미국의 재정절벽 우려가 정치적 타협으로 완화됐고, 미국·중국 등 주요국 경기도 회복 조짐이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최악을 벗어났다는 전망도 가세하고 있다.

 투자자를 더욱 들뜨게 하는 건 요즘 회자되고 있는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 주식 자산으로의 대전환)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채권을 선호하던 글로벌 투자자금이 세계경기 회복, 저금리 시대 종결 전망 등으로 인해 주식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수년간 순유출 행진을 벌였던 미국 주식형 펀드에는 올해부터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증시의 부활 주장에 적극 동조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은 왜일까. 현재의 상황을 ‘보이는 것’과 ‘보고 싶은 것’으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세계 증시를 떠받치는 경제 펀더멘털이 ‘보이는 것’처럼 양호한 지가 의문이다. 강세장이 펼쳐지던 2003~2007년 세계 주가는 4년 반 만에 무려 123%나 상승했는데, 여기에는 같은 기간 연평균 4.8%의 탄탄한 세계 경제 성장이 뒷받침됐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지난해 3.2% 성장한 세계 경제는 금년 3.5% 내외의 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2000년 이후 경기 침체기를 제외한 기간 중 연평균 세계 경제 성장률이 4.5%인 점을 감안하면 그레이트 로테이션을 확신하기엔 다소 미흡한 측면이 있다.

 그레이트 로테이션의 또 다른 근거인 저금리 추세에 대해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간 안전자산 선호 현상과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하로 투자자금이 채권에 대거 몰렸다. 주요국 금리가 이미 큰 폭으로 내린(채권가격 상승) 상황에서, 이제는 금리가 상승할(채권가격 하락) 일만 남아 채권의 투자매력이 줄어들 것이란 주장이다.

 최근 미국·독일 등 주요국 국채금리가 일부 반등한 것이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본격화되려면 주요국 금리가 기조적인 상승세를 보여야 하는데, 이런 상승세가 나타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경기, 물가, 중앙은행의 정책 등 어디에도 이러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지금은 잦아든 글로벌 위험요인이 재차 불거지며 주요국의 금리를 상당 기간 낮은 수준으로 묶어둘 가능성도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이와 관련한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다우지수가 1만에 처음으로 도달한 1999년, 미국에서 있었던 증시 향방에 대한 논쟁이다. 논쟁의 당사자는 모건스탠리 전략가인 바턴 빅스와 당시 『Dow 36,000』이라는 책을 출간해 선풍적 인기를 끈 경제학자 제임스 글래스먼이었다. 빅스는 주가 상승이 당시의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너무 앞서갔다고 주장한 반면, 글래스먼은 오히려 다우지수가 조만간 3만에 이를 것이라고 역설했다. 논쟁 직후 청중들의 투표 결과는 80대 2, 글래스먼의 압승이었다. 그나마 빅스가 받은 두 표 중 한 표는 그의 아내 표였다. 하지만 미국 증시는 글래스먼의 예상과는 반대로 2000년대 들어 장기간 부진을 면치 못했다. 모두 ‘듣고 싶지 않은’ 정보에 대해선 귀를 닫아버린 셈이다.

 그렇다고 현재 증시가 다시 크나큰 약세장으로 접어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글로벌 경기와 대외여건이 완만하게 개선되면서 다른 투자 자산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보일 것이란 전망에 무게를 두고 싶다. 다만 세계 증시의 강력한 상승세가 장기간 이어지고,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본격화된다는 장밋빛 일색의 전망에는 조심스러운 자세를 권하고 싶은 것이다.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