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받아쓰기 비서실장’은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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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정권은 분업 체제로 운영될 것 같다. 국회 청문을 통과하면 정홍원 총리는 법치와 안전·복지,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경제를 총괄하게 된다. 김장수 안보실장은 외교·안보 담당이다. 셋을 제외한 나머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눈이다. 안으로는 비서실을 지휘하면서 밖으로는 총리·경제부총리·안보실장 3각 체제 정권을 조망해야 한다. 3각 분업 체제를 조정하고 국정 흐름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자리는 비서실장뿐이다. 비서실장이 중요 사안을 놓치면 대통령과 집행부서 사이에는 괴리가 생길 것이다.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귀다. 박근혜 당선인은 여성이라 술자리처럼 자유롭고 활발한 ‘여론광장’을 접할 기회가 적다. 객관적인 평판과 여론은 그런 여론광장에서 효과적으로 걸러진다. 박정희 대통령은 10명 가까운 특보단과 자주 저녁 술자리를 가지면서 좋은 얘기, 싫은 얘기를 다 들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당선인의 인사·국정 운용 스타일은 밀실·폐쇄형이어서 소통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비서실장은 여러 여론을 가감 없이 수용하여 대통령에게 전해야 한다.

 비서실장은 ‘비서 중의 비서’ 또는 ‘받아쓰기 실장’이어선 안 된다. 반대(NO)를 말할 수 있는 파트너형 실장이어야 한다. 민정수석실에서 관할하는 친인척 문제, 대북 신뢰프로세스와 박근혜표 복지 같은 주요 국정에 관해 ‘옳은 비판’을 과감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박관용 비서실장은 김현철의 인사 전횡을 비판했으며 이것이 경질의 주요 이유였다.

 허태열 비서실장 내정자는 중앙과 지방의 행정 그리고 3선 의원의 경험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 재개의 야욕이 없다. 그러므로 순전히 ‘정권의 성공을 통한 애국’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정치 경력은 무난했지만 개혁적 메시지가 별반 없었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의 눈·귀 그리고 NO맨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의 시선도 많다. 비서실장이 정권의 성패에 중요 열쇠를 쥐고 있다는 걸 그는 새겨야 한다. 특히 정권은 안보 비상과 경제 도전 속에서 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