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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등이냐, 얼마 받냐" 비교강박증, 혹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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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연휴는 짧았다. 그 핑계를 대고 귀성을 안 해서 친척들의 잔소리, 사촌들과의 비교를 피했다는 20~30대의 이야기가 여러 매체를 통해 나오고 있다.

설 직전 아르바이트와 취업 포털이 대학생에게 한 ‘설에 듣기 싫은 말’ 설문조사에서는 “누구는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더라”가 하나같이 상위를 차지했다.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 편인데, 명절에 만난 친척이 꼭 누군가와 비교를 해 기분을 망쳐놓는다”는 하소연도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한국인의 비교 스트레스는 ‘엄친아’라는 독특한 유행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현실문화연구에서 출판된 『대중문화사전』(2009)에 따르면 ‘엄친아’, 즉 ‘엄마 친구 아들’은 2005년 어느 웹툰에서 유래했다. 많은 엄마가 친구의 아들(딸)은 “명문대에 갔다더라” “연봉이 얼마라더라” 하는 식으로 끊임없는 비교와 잔소리를 한다. 그러니 엄마 친구 아들이야말로 못하는 게 없는 수퍼맨급 존재가 아닐까 하는 냉소가 웹툰의 핵심이었다.
요즘은 ‘엄친아’의 뜻이 약간 변해 집안, 학력, 외모 등 모든 조건이 좋은 사람을 가리키지만 여전히 ‘내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는 근본적인 뜻에는 변함이 없다. 유행어 중에는 1~2년 후 사라지는 말이 많지만 ‘엄친아’는 7년 넘게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인의 비교 강박증이 이 유행어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속성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은 그중에서도 유별나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해 말 발표한 148개국 사람들의 행복감 조사에서 한국인은 97위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부의 양극화, 긴 노동시간 등 객관적인 요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남과 비교당하고 또 스스로 비교하며 자신의 현재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심리적 요인도 있다. 이런 치열한 경쟁의식은 전후 한국의 기적 같은 경제발전에 한몫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인이 별로 행복하지 못한 것에도 한몫하고 있다.

비교 강박의 문화는 대체 언제부터 생겼을까? 혹자는 자본주의 경쟁시스템과 성공제일주의를 거론한다. 하지만 비슷한 시스템의 서구 국가도 ‘엄친아’란 말이 나올 정도로 비교 강박증이 일상에 스며 있지는 않다. 그것은 그들이 성공지향적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성공의 기준이 다양하고 폭넓기 때문이다. 이 경우 누가 ‘더’ 잘났는지, ‘더’ 잘사는지 비교를 하는 게 어려워진다.

반면에 한국인의 성공이나 행복의 기준은 획일화된 잣대에다 편협한 편이다. 명절 날 친척의 잔소리는 “공부 잘하느냐 - 취업은 안 하느냐 - 결혼은 안 하느냐 - 애는 안 낳느냐- 애는 공부 잘하느냐 - 애는 취업 안 하느냐”로 영원히 순환된다는 농담이 있다. 그저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내가 공부 잘하는 것’에서 ‘자식이 공부 잘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전형적이고 획일화된 성취 기준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농담이다.
그 원인에는 현대의 입시 위주 교육도 있겠지만 더 뿌리 깊은 역사가 뒤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진행 중인 ‘옛사람의 삶과 풍류’ 전시에는 조선 말기 화가 안중식의 10폭 ‘평생도’가 나와 있다. ‘돌잔치 - 혼례 - 과거급제 - 고관이 되어 행차 - 회혼례’ 등으로 이어지는 내용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을 포함한 몇 점의 ‘평생도’가 있다. 그런데 주인공과 벼슬의 디테일만 다르지 내용은 다 똑같다. 조선시대 유교에 기반한 강력한 중앙집권화와 과거제도는 긍정적인 면도 많았지만 성공한 삶의 기준과 양상을 철저하게 획일화하는 데도 한몫했던 것이다.

이제 좀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빛나는 아이디어의 유튜브 동영상으로 세계적 스타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일단 나부터 변해야 한다. 비교의 잔소리는 듣기 싫으면서도 은연중에 거기에 동화돼 스스로를 열등감에 가두고 남에게도 비교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이 많다. 이로써 비교의 굴레는 순환·확장된다. 좀 벗어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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