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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사」가 바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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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계적인 대장편소설에 육박하는 이조때의 순한글 장편소실이 발견되어 종래의 한국문학사가 뒤바뀌게 됐다. 서울문리대 경병욱교수는 창경원장서각에 수장한 낙선재문고를 정리하는 중 새 자료로 고전소설72종을 찾아냈다고 20일 동아문화연구소에 보고했다.
낙선재문고의 문서작성과 보존상황 및 해제(해제)를 위해 한글(궁체)로 필사한 1백22종, 2천3백61책을 조사한 그는 비소설 31종을 가려내고 다시 번역물과 이미 알려진 것을 간추려 나머지 72종이 처음으로 학계에 소개되는 창작물임을 밝혔다.
그중 가장 긴 것은 1백80책으로 엮은 「완월회맹연」. 3대에 걸쳐 전개한 대하소설이다. 세가문의 관계를 서술한 「명주보월빙」(99책)은 그 속편으로「윤하정삼문취녹」1백2책을 잇대고 있어서 사실상 2백1책의 최대장편, 2백자원고지로 4만장을 헤아리므로 세계적대장편에 비견할 정도의 것이다. 이72종의 소설은 2백자원고지로 약45만장을 추산하며, 50권전집이 충분한 분량이다.
다만 이들 소설은 작자도 연대도 밝혀져 있지 않다. 거의 대부분이 넓은 중국 대륙을 무대로 삼고있으나 한국적인 인물이 등장되고 있으며 『이조후기말 (영조∼고종)의 작품으로보아 틀림없다』고 정교수는 작품연대를 짚어 말한다. 필사는 물론 1, 2백년 이내이고. 그러나 이러한 대하소설은 한국문학사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될 몇가지 문젯점을 제시한다고 그는 다짐한다.
첫째, 우리나라 고전 소설은 단편밖에 없고, 한국인은 기질적으로나 능력면에서도 장펀에 합당치않다는 종래의 정설이 뒤바뀌게 된것이다.
둘째, 궁중을 「패트런」으로 하는 전문소설가가 있지않았나 하는 점이다. 장편임에도 거의 완전무결한 구성으로 이끌어 가고 있으며 심지어 1백명의 주인공이 대단원에 이르려 한사람도 빠짐없이 합리적인 처리를 한다.
셋째, 문장의 우수성이다. 하나의 「테마」아래 단편적인 많은 얘기를 엮어낸 점이라든지 섬세하고 「리얼」한 묘사와 특히 심리묘사가 풍부한점등 「춘향전」과 같은 종래의 작품보다 뛰어난 것으로 보고있으며 고대소설사에 하나의 「장르」를 만들게 될 것이다.
궁중여성들을 독자로 하는 이들 소설책은 근년까지 낙선재에 비장된채 공개되지 않았다. 고종이후 내전에 비치했던 두서는 1915년 따로 서고를 마련한 후 장서각에 이판하여 공개됐으나 낙선재문고는 개인수장품이라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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