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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칼럼]15년 소원은 풀었으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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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上海) 어느 식당에서 맥주를 시켰더니 2백96㎖짜리 칭다오피주(靑島酒) 한 병에 20위안이고, 6백40㎖짜리는 15위안이었다. 가격이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는 종업원을 불러 '훌륭한 손님'의 자세로 그 잘못을 고쳐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게 맞는다면서, 다만 작은 병이 더 '예쁘기 때문에' 값이 비싸다고 했다. 설사 작은 병의 재질이나 디자인이 더 좋더라도 손님이 그 병을 가져가지 않는다면 그 산술은 잘못이다. 주인이 개그 체질인 모양이다.

*** 베이징'迎接 WTO'간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1백43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1986년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시절에 가입 신청을 냈으니, 세기를 바꿔 15년 만에 꿈을 이룬 셈이다. 세계 무역 8대국으로 인류 5분의1의 시장을 고의로 돌려놓은 것은 애초에 옳지 않은 처사였다.

인권문제 등속의 시비가 있었지만, 인권과 무역의 상관관계도 애매할 뿐더러 거기 미국과 중국의 '힘 겨루기' 게임이 곁들였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중국으로서는 '될 것이 된 것'이고, 세계에는 '올 것이 온 것'이다.

베이징(北京)의 '迎接 WTO'의 전광판이 가리키듯이 중국의 환영 열기는 아주 뜨거운 듯하다. 일례로 현재 4천7백억달러 정도의 무역거래가 2005년에는 7천억달러로 껑충 뛰어오른다는 따위의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국제기구 하나에 가입함으로써 국내총생산이 최대한 2%나 늘어날 전망이라니 대단한 경사임이 분명하다. 그 '예언'의 실현 여부를 떠나 '희망 사항'으로라도 해로울 것이 없으렷다.

그 밋밋한 감상 속에 문득 상하이 식당의 맥주 값이 떠올랐다. WTO의 칼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그 어수룩한 산술과 장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 칼에 걸릴 것은 시시한 맥주 값 따위가 아니다. 관세율 인하 같은 대어가 있다. 90년대 초반 40%에 머물던 평균 관세율이 현재 15%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5년까지 이를 다시 9%대로 내리고, 정보 기술(IT) 제품에는 아예 관세를 없애야 한다.

그동안 제법 면역이 생겼겠지만 보호무역에서 본격적인 자유무역으로 체질을 바꾸는 데는 위험이 많이 따른다. 개방 초기의 '비교우위'에 힘입었던 무역 흑자는 98년을 고비로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WTO 가입 이후에는 오히려 적자로 반전될 전망이다. 외국인 투자는 아직도 왕성하나 여기서도 '중국 탈출'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작년 한 해 상하이 한 곳에서만 1천개 이상의 외국 기업이 봇짐을 쌌다. 특히 농업은 최대의 취약 부문으로 미국의 '개방 미사일'에 완전히 노출된 상태다. 앞으로 비관세 장벽을 허물고 오직 관세로만 버텨야 하는데 당장 밀과 면화 등의 주요 농작물에서만 1천여만명의 실업자가 예상되는 판이다.

중국의 시장경제 학습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선전(深□) 경제특구의 관리들은 건물까지 지어주며 외자 기업을 유치하는 이웃 둥관(東莞)의 태도를 크게 탓했다.

쑤저우(蘇州)공업원구의 책임자 역시 더 싸게 분양하는 신설 단지의 출현에 불만을 터뜨렸다. 내가 하면 적정 경쟁이고 공정 거래지만, 남이 하면 과당 경쟁이고 불공정 거래가 되는 것이다.

WTO 가입으로 이런 과당 경쟁과 불공정 거래가 생존 원리로 등장한다. 여기서 부지하려면 교과서 학습 이외에 현실에서의 시행착오를 통한 과외수업이 필요하다. 그 중에도 5천만명이 늘어날 실업에 대한 수업료가 가장 비쌀 듯하다.

또 '민주화' 비용이 만만하지 않다. 시장경제의 효율을 높이려면 화끈하게 풀어야 한다.시장 원리와 공산당 통제의 어정쩡한 동거로는 시장도 질식하고 공산당도 죽는다. 89년에는 천안문 광장을 피바다로 만들면서 민주화 요구를 눌렀으나 앞으로 다시 그런 '용기'와 요행에 기댈지는 적잖이 의문이다.

*** 시장 원리와 공산당 통제

WTO 가입의 소원을 풀었으니 이제 2008년 올림픽이 남았다. 글쎄 치러보면 알겠지만 올림픽 경기의 경제적 효과 따위의 현란한 설교는 별로 믿을 것이 못된다.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중국의 외국인 투자라든가, 한국 산업의 경쟁력과 공동화 우려를 생각하면 '올 것이 온 데' 대한 우리의 초조는 절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역량 7백억달러 규모이던 86년의 중국보다 4천7백억달러인 오늘의 중국에서 얻는 것이 더 많다면, 그들의 WTO 진출을 경계하면서도 축하해야 하리라.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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