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21년 간의 역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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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 분단·군정·과정·건국·동란을 거친 기간은 문자 그대로 혼미의 시기였다. 공산 분자의 도량과 보수적인 민족지 영내의 분열은 민족적 의지의 총합을 원천적으로 저해했다. 제도나 인재, 그리고 국부의 역사적 축적이 워낙 미약했던 여건 위에서, 지리멸렬을 극했던 정치 사정은 모처럼 되찾은 국권을 위태롭게 할 지경에까지 갔었다.
그와 같은 위기는 6·25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었지 마는, 그것은 오히려 공산당의 죄악상을 직접 체험케 함으로써 민주주의에 입각한 사회 정신의 확립에 근본적인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53년 7월의 휴전에서 60년에 이르는 동안, 계속된 풍작과 방대했던 미국의 무상원조는 전재 복구와 생활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카리스마」적 정권의 장기 지속은 4·19를 자초하고야 말았었다.
민주당 정권은 사회 통제력의 부족으로 사회 조직의 「민주화」대신에 오히려 질서의 교란을 가져오게 했었다. 사회 성원의 민주 의식에 미숙은 다른 후진국에 있어서나 마찬가지로 군정을 겪게 했다. 그러나 「의욕」의 고취와 성장에의 편달은 이완됐던 사회 기풍을 많이 진작시켰다. 반면에 「의욕 과잉」이 무리와 낭비를 수반함으로써 내발적인 능동성과 「착실한」전진을 해친 허물도 간과할 수는 없다.
위와 같은 역정을 거쳐서 우리는 오늘의 시점에 섰다. 오늘의 시각에서 지난 21년 간을 회고해 볼 때 우리는 어떠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 근대 초기의 서구 국가들은 국민 국가로서의 「통일」과 중세적인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표방했었다. 오늘의 우리는 갈라진 민족의 통일과 사회 이념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 통일과 자유라는 기준에서 해방 후의 역사를 되씹어 보는 일, 그것이 광복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뜻일 것이다.
통일과 자유에의 접근은 그 경로의 여하를 막론하고 통합된 사회 의지와 민족적 역량의 착실한 축적을 그 전제로 한다. 그러나 지난 21년이라는 세월 동안 어느 정도로 이와 같은 전제를 충족시켜 왔는가에 상도 한다면 창결한 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점은 마땅히 국민적 반성이 요구되고 있다고 할 것이지마는, 특히 각 분야의 지도층은 깊은 생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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