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종의 권력욕' 지나치게 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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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드라마 '태조 왕건'에 이어 왕건의 아들인 광종 왕소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제국의 아침'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고조시켰다는 점에서 이같은 역사 드라마의 긍정적 역할은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항상 따라다니는 질문은 과연 드라마가 실제 역사적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가이다. 흥미를 끌기 위한 각색 과정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제국의 아침'도 예외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고려사를 전공한 김창현 박사는 최근 '광종의 제국'(푸른역사 펴냄)이란 저서에서 '고려 역사 다시 보기'를 시도하며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 나타난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선 태조를 계승한 혜종 왕무가 재위 기간 내내 병으로 고생하는 우유부단한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보면 혜종은 주먹으로 자객을 때려눕혔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강건한 인물이었는데도, 드라마는 혜종의 병약한 모습을 강조한 나머지 그 기록이 의문시된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 버렸다"고 지적했다. 실제 역사와 달리 주인공을 둘러싼 드라마 속 조연의 필연적 비애일까.

가장 큰 비판은 태조 왕건 이후 왕위 계승 과정에 벌어진 유혈 정변의 가능성이 너무 싱겁게 처리돼 버렸다는 점이다.

2대 혜종 이후 3대 정종 왕요를 거쳐 4대 광종 왕소가 즉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살상당한 사료가 있음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의 문제다. 드라마가 그려 놓았듯이 평화로운 정권교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광종을 비롯한 왕자들이 벌인 치열한 왕위계승전은 단순히 왕위를 둘러싼 권력투쟁이라기보다는 호족.지방의 시대에서 강력한 왕권 중심의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이었으며,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가 실질적인 통일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는 고려 역사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런데 "광종에게 정당성과 도덕성을 부여하기 위해 애쓴 드라마는 광종이 추구한 중앙집권과 황권주의를 정의로 내세우는 과정에서 광종은 중앙집권과 황권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피흘린 비련의 황제이자 권력욕이 없는 좋은 인물로 묘사된 반면, 그것을 추진하지 못한 혜종과 정종은 빨리 사라져야 할 인물로, 그리고 그것에 방해가 되는 호족이나 공신은 숙청되어야 할 나쁜 존재로 묘사되었다"고 김박사는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역사를 지나치게 일면적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데로 모아진다. 드라마에서 광종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른 인물의 성격과 삶이 평면적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혜종은 병약하고, 정종은 권력욕이 강한 반면, 광종은 사심없는 완벽한 인간으로 그려지는 식이다.

김박사는 "혜종.정종.광종 그리고 호족.공신들을 공평한 시각에서 조명해 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특히 "왕조시대의 기록은 승자의 입장이 투영되게 마련이므로 행간에 숨은 패배자의 입장을 헤아려보려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광종의 역사적 의의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모두 2부로 나뉜 책에서 제1부에 '혜종.정종.광종 3형제 시대'를 다룬 후, 제2부 '광종의 시대'에서 광종이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며 개혁과 숙청을 통해 절대 황권을 구축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는 "광종은 긴 재위 기간 동안 노비안검법, 과거제 등 굵직굵직한 업적을 통해 중앙과 지방을 융화시켜 5백년 고려의 기틀을 확고히 했다"면서 "광종은 후삼국의 실질적 통일을 완수했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위대한 임금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끝으로 저자는 "혜종.정종과 호족.공신 등에게도 정당한 평가를 해주는 일은 광종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위대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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