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책이 있는 토크쇼] '평등한 가난'에 相生의 길 있다

중앙일보

입력

"공존공영(共存共榮) 이 아니라 공빈공락(共貧共樂) 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방향"이라며 평등하게 가난해지자고 주장하는 잡지가 있다.

8일 창간 10주년 기념 모임을 갖는 환경.생태운동 전문 격월간지 『녹색평론』이다.1991년 11월 이 잡지가 처음 나왔을 때 2~3년 이상 발간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소박한 느낌의 재생지에 상업광고는커녕 사진 한 장 없는 편집도 그렇지만, 시대를 너무 앞선 듯한, 발행인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진보적.급진적인 차원을 지나 의식의 근원적 변화를 요구하는" 내용 때문이었다.

이후 10년을 버텨온 '한국 환경.생태론의 핵심매체'의 발행인 겸 편집인 김종철(54.영남대 영문과) 교수를 만나기 위해 대구에 있는 녹색평론사 사무실을 찾았다.

생태문제를 일깨우는 소설집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도요새) 등을 내는 한편 환경운동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최성각(46) 씨가 먼 길을 동행, 한국의 환경.생태운동에 관해 속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녹색평론』은 환경.생태운동에 대한 시각을 넓힘으로써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 전체에 큰 울림을 주어 왔다고 봅니다. 자연과 인간 스스로에 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가운데, 본질은 '권력'의 문제임을 끊임없이 일깨워온 것 말입니다. 이번 11.12월호에서 미국 9.11 테러사건에 대한 국내외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는 것도 한 예가 아니겠습니까.

▶김종철=남들이 그렇게 평가해주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이 지구의 숲을 없애는데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아요.

'순환형 사회'로 가야

▶최성각=무슨 말씀이십니까□ 환경운동을 하는 한 문학지식인으로서 『녹색평론』이 '왜'라는 운동의 근거와 지향성을 제시해준데 대해 늘 감사합니다. 또 『녹색평론선집 1』이나 『오래된 미?뺐걋?녹색평론사에서 발행한 단행본들도 우리나라 정신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그동안 '경제성장'이란 환상에서 빨리 깨어나 '가난하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오셨는데요.

▶김종철=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보릿고개'를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개발독재에도 부응해왔어요. 그 결과 풍요롭던 정신적 재산이 완전히 메말라 버리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기술개발로 리사이클링을 하는데도 한계가 있어요. 농촌공동체와 같은 자연적인 '순환형 사회'로 돌아가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사회=하지만 그건 좀 비현실적인 주장이 아닐까요.

▶김종철=그럼 현실적인 대안은 뭡니까. 제 주장은 근원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현재의 방향을 바꿀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하는 거라고 봅니다.

▶최성각=그런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발적 가난'의 메시지가 실제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확히 전달될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김종철=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는 앞으로 좀더 정교하게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결핍한 '절대적 빈곤'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벗어나야 할 상태죠. 그것을 위해서라면 지금도 지구는 풍요롭습니다.문제는 '상대적 박탈감'입니다.

▶최성각=97년에 라다크에서 『오래된 미?뼈?저자를 만났을 때 들은 말이 기억납니다. 그가 처음 라다크에 갔을 때 "우리 마을엔 가난한 집이 없다"고 하던 그곳 젊은이가 서구문명에 개방된 후 10년 만에 표면적 생활은 오히려 풍요로워졌는데도 "우린 너무 가난하다"고 하더랍니다.

▶사회=5천여명의 정기독자와 11곳의 지역모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발행부수 8천부에 비하면 놀라운 비율이지만 독자를 늘리는데 소극적인 것 같습니다.

▶김종철=솔직히 독자를 늘려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은 욕심이 들 때도 있어 곤혹스럽습니다. 중앙집권적 권력을 비판하고 욕심을 줄이자고 주장해온 사람들로서 우리 자신의 근본적인 모순 같아서요. 그래서 현재에 만족하고 회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 메시지를 전달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사실 이 잡지를 시작할 때 김지하 시인과 제일 먼저 의논했었는데 의견차이가 났던 부분도 그것이거든요. 김시인은 "작게 하면 업신여긴다"고 했었죠.

▶최성각=현재 한국의 환경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종철=증상만 좇아다닐 게 아니라 뿌리를 공격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환경단체들은 아직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효율성에만 집착하는 거죠.

▶사회=문학비평가와 소설가로서 문학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자연과 인간은 동격

▶최성각=제가 동강댐 건설 반대 운동 등을 하고 다니니까 문단 어른들이 작가는 글이나 쓰라며 점잖게 타이르시더군요. 하지만 삶과 분리된 문학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언젠가는 이런 경험들을 성숙시켜 작품으로도 보일 수 있겠죠.

▶김종철=문학판에 그렇게 싸움꾼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영국에서 '부커상'등을 수상한 인도 출신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인도의 핵개발이나 댐건설 문제를 비판하자 인도 정부가 여러 경로로 위협을 했죠. 그런데 그의 대답이 "나는 국가가 아니라 강과 계곡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였습니다. 위대한 작가는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을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가장 상처입고 있는 대상은 자연 아닙니까.

▶최성각=그래서 저희 단체에선 3년째 동강의 철새.지렁이 등에 '풀꽃상'을 드리고 있죠.

▶김종철=그렇지 않아도 풀꽃상을 참 혁명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왔어요.그렇게 자연을 인간과 동격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