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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안해룡 비디오 저널리스트

중앙일보

입력

잘 다니던 직장을 팽개치고 사진을 찍겠다고 시위 현장을 돌아다니던 때가 1980년대 말이었다. '프리랜서'기자란 개념도 희미하던 시절이었다. 시위 현장을 헤매다 한 일본인 프리랜서 기자를 만났다.

그를 통해 일본을 방문해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충격이었다.

동시에 새로운 일깨움이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전문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는 폭과 깊이에서 전문 학자와도 견줄 수 있었다.

자신이 광산노동자이면서 규슈 지역 광산노동자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 우에노 히데노부(上野英信) 의 작업에 관해 들었을 때는 전율이었다.

도요타자동차에 취업해 컨베이어 노동자로 생활하며 기록한 가마타 사토시(鎌田慧) , 금권 정치의 정점에 서 있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 등의 작업도 프리랜서 기자들이 성취한 보고물이었다. 이런 일본 프리랜서의 귀중한 작업들이 요사이 조금씩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어 반갑다.

가마타의 『자동차 절망공장』(우리일터기획) 은 합리적 생산방식의 이면에 컨베이어의 노예로 변모해가는 노동자들의 인간 해체 과정을 파헤쳤다.

재일 조선인의 현재와 과거를 5년에 걸친 취재를 통해 추적한 노무라 스스무(野村進) 의 『일본, 일본인이 두려워한 독한 조센징 이야기』(일요신문사) 도 '프리랜서 기자'의 역할을 일깨우게 한 작업이었다.

현재 일본에서 최고의 천재 기자라고 하는 다치바나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청어람미디어) 를 얼마 전 서점에서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다. 이 책은 홀로 거대하고 부패한 일본의 정치 권력과 일대 전쟁을 당당하게 치러낸 다치바나의 독서론이자 독서술이다. 또 그의 취재를 위한 일종의 조사 방법론이기도 하다.

고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평전』(개정판,돌베개) 은 이런 일본 프리랜서 기자들의 작업에 버금가는 빛나는 기록이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노동자 전태일의 일대기를 그린 이 책은 80년대 많은 젊은이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했던 의식화의 제1교재였다. 사회를 변화하게 한 프리랜서 기자들의 작업을 곱씹어본다. 연성화되는 우리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시대정신으로 다시금 무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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