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망했을 곳에 세금 vs 공공재, 나라가 부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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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토론은 ‘꼬리 물기’식으로 이뤄졌다. ①수익성이냐 공익성이냐 ②시장 참여 강화냐 축소냐 ③정부 통제 강화냐 자율성 확대냐 ④인력 감축이냐 채용 확대냐의 공기업 개혁 방향 4개 주제에 대해 4명의 교수가 찬성·반대 입장을 정한 뒤 맞짱 토론하는 형식이다. 대선 토론 방식을 연상하면 된다. 낙하산 인사와 임기 보장 여부는 토론을 생략했다.

수익성 vs 공익성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이하 조)=수익성이 먼저다. 삼성전자를 예로 들자. 이 회사가 수익성 나쁜 것만 만들었다면 벌써 망했다. 그러나 코레일을 보라. KTX만 수익이 난다. 무궁화호는 적자다. 지방철도는 텅텅 빈다. 지방버스가 워낙 잘 돼 있어 고객이 없다. 그러다 보니 KTX에서 번 돈을 무궁화호 적자 메우는 데 쓴다. 코레일이 그래서 적자다. 이게 다 국민 세금인 셈이다. 왜 요금으로 해결할 일을 세금으로 메우나.

 ▶윤태범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이하 윤)=KTX와 무궁화호는 대체재가 아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다. 무궁화호는 싸다. 지방 이용객에겐 필요하다. 일부 적자 메워주는 게 옳다. 도로공사를 예로 들어보자. 도로 닦을 돈이 없다. 그래서 정부 돈 빌려 도로 놓고 통행료를 받는다. 대신 정부가 요금을 통제한다. 원가대로 다 받으면 너무 비싸지니까. 공기업엔 이런 공익성이 꼭 필요하다.

 ▶조=임대주택 지을 때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빚 내서 지었다. 경기 침체로 빚이 133조에 달한다. 1년 이자만 4조원이 넘는다. 이 빚을 결국 정부가 보조금 줘 갚고 있다. 임대주택 거주자가 산 임대주택 값, 그 사람들이 살면서 내는 관리비까지 국민 세금으로 대신 내주는 셈이다. 민간이 임대주택 지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수익은 무시하고 선심성 공익만 찾다가 생긴 일이다.

 ▶윤=공기업은 넓은 의미의 정부기관이다. 수익성만 따지다 대국민 서비스 질이 떨어지면 그런 공기업은 존립근거가 없어진다. 처음부터 빚을 지는 구조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공익성 확보를 위해 애초 정부가 재정적 부담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사용자가 공공재 사용에 따른 부담을 지게 해선 안 된다.

시장 참여 확대 vs 축소

 ▶조=공기업 시장참여 좀 줄여야 한다. 공기업이 많아도 너무 많다. 지하철공사, 주택공사에서 금융공기업까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전력 등 상장 공기업은 세 곳뿐이다. 그런데 이들조차 정부 눈치만 본다. 망할 것 같으면 정부가 돈 대준다. 그래서 정부 마음대로 한다. 신도 탐내는 직장, 철밥통 된 지 오래다. 대학생 선호 직장 1위다. 그런데 이런 직장 가서 대학생들이 뭘 배우겠나. 이런 공기업이 나라 미래를 망친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이하 오)=시장은 짐승이다.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좋은 서비스가 나올 수 없다. 시장이 알아서 했다면 정부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929년 미국 대공황처럼 시장 실패는 불가피하다.

 ▶조=석탄공사 같은 공기업을 왜 국민세금으로 살려줘야 하나. 생산성 떨어져 무연탄 생산비가 외국보다 10배 높다. 이게 비효율이다. 지원금 주고 정리하는 게 맞다.

 ▶오=전기를 보자. 생산 원가의 80%에 판다. 민영화로 시장을 풀면 전기요금 왕창 오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사례가 있잖은가. 국가 서비스를 민영화할 때는 시장·국민이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정부 통제 강화 vs 자율성 확대

 ▶신완선 성균관대 시스템경영학과 교수(이하 신)=공기업 직원이 아이디어 잘 내서 1000억원 벌었다 치자. 승진은 하겠지만, 그걸로 끝이다. 큰 이득은 없다. 반면 1000억원을 잃었다고 치자. 바로 신문에 나고 구속되거나 최소한 집에 가야 한다. 자율이 없으니 보상이 없고 보상이 없으니 경영이 방만해진다. 이미 공기업에는 3중·4중의 통제가 가해지고 있다.

 ▶오=공기업에는 민간 기업 오너 같은 통제 기구가 없다. 따라서 정부·국민이 관리 감독을 더 세게 해야 한다. 주인이 없으면 쉽게 방만해진다. 높은 부채비율을 보라. 왜 생겼나. 감시 소홀한 틈에 생겼다. 국민이 직접 감시 못하니 정부가 대신 통제해야 한다.

 ▶신=통제로 공기업 혁신한다고 했는데, 정반대다. 자율을 줘야 혁신한다.

 ▶오=통제보다는 정부의 견제 역할이 계속돼야 한다는 의미다. 열심히 하면 120까지 국민서비스 할 수 있는데, 기껏해야 100만 한다. 그러므로 정부가 독려해 120까지 서비스를 올려야 한다. 정부가 간섭 안 하면 공기업은 서비스를 극대화할 이유가 없다.

인력 감축 vs 채용 확대

 ▶윤=지난 대선 최대 화두는 일자리 창출이었다. 정부는 민간에 고용 늘리라고 하면서 공기업엔 구조조정을 얘기한다. 지방 이전을 통해 공기업은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다.

 ▶신=공기업 비효율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궁극적으로 국민 부담이 된다. 인천대 옥동석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공기업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매년 2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효율성을 강화해 수익을 내면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윤=공공기관은 제조업보다는 관리 쪽이 많다. 효율과 바로 연결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신=효율성은 막연히 사람 줄여서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한 새 아이디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

전문가 토론이나 분임토의를 거쳐 ‘숙의 과정’을 거치는 국민 여론조사. 일정한 집단을 선정해 ▶1차 여론조사를 하고 ▶이들에게 주어진 쟁점에 대해 균형잡힌 전문가의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심도 있는 그룹별 토론을 진행한 후 ▶2차 조사를 해 의견의 변화 과정을 살피는 것이다. 이해 정도에 관계없이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듣는 여론조사와 달리 토론 과정을 통해 사안에 대한 이해를 키운 뒤 ‘푹 익은 여론’, 즉 공론(Public Judgement)을 수렴한다.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다시 조사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여론을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토론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는 노력이 이뤄지기 때문에 사회통합적 여론조사라 불리기도 한다.

 1988년 미국의 제임스 피시킨 교수가 ‘절차의 이론적 근거와 민주주의의 기여’를 통해 공론조사를 주장한 게 시초다. 이후 영국·호주·덴마크를 거쳐 미국·한국 등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분야의 공공정책 결정을 위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이번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조세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공공기업 공론조사’는 지난 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한국리서치가 서울 지역 시민 211명을 선정해 1차 설문조사를 했다. 시민들은 2일 오후 전문가 4인의 찬반 토론을 지켜본 뒤 조별 분임토의를 거쳐 같은 설문에 대해 2차 응답을 했다. 한국리서치 측은 서울을 4개 권역으로 나눠 20~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패널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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