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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개 패듯' 잔인한 도살이 문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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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쿠르상 수상작가인 레바논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 아민 말루프의 소설 『아랍인이 본 십자군 전쟁』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원정 길에서는 수많은 야만적 풍습을 가진 종족들을 만난다. 그중에는 인육을 먹는 종족도 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야만적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개고기를 먹는 종족들이다."

개고기 음식문화에 대한 서양인들의 뿌리깊은 혐오감이 이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이같은 혐오는 한국이 국제행사의 주체가 될 때마다 별책부록처럼 개고기 논쟁을 불러왔다. 월드컵을 반년 앞둔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의 직무를 벗어난 참견성 발언을 시작으로 미국 TV의 덜익은 추적보도, 프랑스 TV의 삼류 코미디 프로에도 등장했다.

달라진 것은 외국의 비난에 보다 의연해진 우리의 태도다. 행여 눈에 띌까 보신탕집을 뒷골목에 숨기기 급급했던 88 올림픽 때와는 사뭇 다르다."남의 나라 음식문화에 쓸데 없는 간섭말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치가 그만큼 뛰어올랐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서양인들의 비난이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의 애호가들이 보신탕을 포기할 리도 만무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소모적 논쟁을 계속해야 할까. 개고기에 대한 비난은 우리 음식문화에 대한 저들의 몰이해 탓이기도 하지만 개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이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 보다 큰 이유다.

세집 중 한집은 애완견을 키우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개는 그야말로 가족과 다름없다. 가족 소개를 할 때 막내로 소개되는 베티나 폴은 흔히 애완견 이름이다. 부부가 이혼할 때 애완견에 대한 양육권 소송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인육을 먹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못참는 것은 잔인한 도살 방법인 것 같다. 우리를 분노케 했던 프랑스 TV 프로에서도 상당수 토론 참가자들이 서로 다른 음식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복날 개패듯'하는 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리에서 떼쓰는 아이에게 따귀를 올려붙이는 부모에게는 관대해도 짖어대는 개를 발길로 걷어차면 당장 신고가 들어가는 게 저네들 사회다.

논쟁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상대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들의 문화를 알고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개를 잡는 방법이 소나 돼지만 같았어도 비난의 강도가 이처럼 높았을까.

이훈범 특파원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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