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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독설인 듯 … 파열음, 또 파열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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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호 27면

미국의 현악사중주단 크로노스 콰르텟. 왼쪽부터 행크 더트(비올라), 데이비드 해링턴(1바이올린), 존 세르바(2바이올린), 조안 장르노(첼로).

자기를 경멸하는 사람은 경멸할 줄 아는 자기를 존경한다, 라고 어여쁜 줄리아 로버츠가 니체를 인용하는 영화 ‘컨페션-위험한 정신의 고백’을 보다가 황급히 책장을 뒤졌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신통하게 꽂혀 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니체 충격으로 허우적거리는 체험이 필요하다. 『차라투스트라…』 속에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독설과 요설이 숨막히게 이어진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그런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몰락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 몰락하는 존재의 삶의 의미는 인식하는 데 있다. 인식을 갈망한다면 궁극적으로 몰락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詩人의 음악 읽기] 크로노스 콰르텟의 ‘블랙 에인절’

니체는 말한다. 행운을 수치로 여겨라. 자신의 신을 사랑한다면 그 신을 징벌하라. 자신의 영혼을 낭비하라. 감사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려고도 하지 말라. 자기를 지키려고 하지 말라. 행동에 앞서 황금의 말을 던지고 언제나 약속한 것 이상으로 행하라. 그것이 몰락으로 가는 길이다…. 전체 맥락을 빼고 들으면 정신이상자의 중얼거림 같은, 총기난사범이 드드드드 갈기는 M16 자동소총 같은 언어 총탄 속에 혼돈의 에너지가 펄펄 날뛴다. 우리는 니체가 경멸해 마지 않던 ‘대지에 뿌리박힌 자’로서 살아간다. 그 진부한 대지에서 벗어나는 길은 혼돈의 아수라장 속으로 뛰어드는 것뿐이다. 그것이 바로 몰락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인간은 극복돼야 할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니체 같은 음악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차라투스트라…’를 제목으로 교향시를 작곡했지만 그는 니체를 정반대로 이해한 것 같다. 무정형으로 산산이 흩어지며 존재를 뒤흔들어 놓아야 할 니체가 우람하게 통합된 마초적 분위기의 영웅 숭배곡으로 꾸며져 있다. 가짜거나 하류거나. 예술이 고매한 가르침이나 여가선용 따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면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끝까지 가볼 수 있어야 한다. 그 끝이 어디인지 측량할 수는 없으나 마치 니체의 언어처럼 극한의 체험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파괴된 세계, 타버려 재만 남은 혼돈과 무질서와 잔혹함이 가득한 세계, 그런 속에 살아남아 있는 생명체의 처절함….

크로노스 현악사중주단의 음악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은 정통적인 현악사중주단이고 웬만큼 이름 있는 음악상은 도맡아 가며 수상한 음악계의 주류다. 하지만 설명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온통 혼돈스럽고 어지러운 현대음악에서 재즈와 록, 아프리카 민속음악 장르까지 섭렵하고 있는 그들의 음반 가운데 아무것이라도 하나 집중해서 들어본다면 곧장 떠오르는 단어가 ‘극한’일 터이다. 불편한 상태인데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어떤 균형감 혹은 안도감을 느끼는 상태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크로노스의 음악이라고 해도 좋다. 1973년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해링턴에 의해 창단돼 어언 40년의 연조다. 유일한 여성 멤버로 언제나 뾰족하게 날 선 표정을 짓는 첼리스트 조안 장르노, 이후의 제니퍼 컬프까지 무뎌진 아줌마 상으로 변해가더니 이제는 그 첼로를 흑인 멤버 제프리 차이글러가 차지하고 있다. 공식 출시 음반만 45장이 넘는다. 국내에서는 피아졸라의 탱고곡으로 엮은 앨범 ‘Five Tango Sensations’가 많이 팔렸고, 지미 헨드릭스의 ‘퍼플 헤이즈’나 스티브 라이히의 미니멀 음악을 연주한 ‘Different Trains’, 월드뮤직을 추구한 ‘Pieces Of Africa’, 그리고 다양한 스타일로 일종의 종합선물 같은 성격을 띤 ‘Winter is Hard’를 주요 음반으로 꼽고 싶다.

하지만 그 많은 음반 가운데서도 베트남전을 비판적으로 다룬 ‘블랙 에인절’(작은 사진) 음반은 남다르다. 조지 크럼이 작곡한 이 곡을 듣고 그 충격으로 해링턴이 콰르텟을 결성할 뜻을 굳혔으니 말이다. 블랙 에인절, 즉 우호적으로 다가와서 궁극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에인절’의 존재는 현대사회를 대하는 크로노스 콰르텟의 음악정신을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1악장 출발, 2악장 부재, 3악장 귀환으로 구성된 작품은 시종 지리멸렬하게 신경줄을 거스르는 현악기 파열음으로 이어지다가 돌연 단원들이 분노에 가득 찬 고함을 질러댄다. 처음 들었을 때 그 고함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블랙 에인절을 틀어놓고 니체의 독설을 읽으며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내린다. 개폼이더냐, 자학이더냐, 그냥 아무것도 아닌 저녁시간이더냐. 그래도 모기 소리로 외쳐본다. 나는 이 지상에서의 삶이 싫다고. 극복되지 않는 인간, 대지에 뿌리박힌 소시민의 삶이 막막하다고. 그러나 오늘 하루 신상에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블랙 에인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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