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미동맹 계속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19세기 독일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비스마르크의 강점은 남보다 한발 앞선 통찰력에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미국과 영국이 언어를 공유하는 사실에 주목하며 훗날 미국이 영국의 힘이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사실 제1, 2차 세계대전에서의 영국의 승리는 미국의 참전없이는 불가능했다. 오늘날 미.영이 누리는 특수관계도 언어의 공유가 그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한은 피를 나누고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으로 이뤄져 있으며 수천년에 걸쳐 문화와 역사를 함께 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체제와 가치의 차이, 그리고 반세기에 걸친 대립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남북화합에 대한 기대가 높다.

한반도에서 태어난 우리들에게 남북의 갈등과 대립보다는 화합과 공영(共榮)이 절대로 중요하다. 주위의 국가들도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 다만 남북관계가 화합을 넘어 결속의 단계로 발전하는 데는 유보적일 수 있다.

*** 남북화해·협력 기대 높지만

그렇다면 남북이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오늘, 그동안 북한을 가상 적으로 규정해온 한.미 동맹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는가? 한.미 동맹과 민족화합은 공존할 수 없는가? 결론은 공존할 수 있으며 또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미 동맹은 계속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우리와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관을 공유한다.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다.

미국을 '패권국가'로 지칭한다 하더라도 미국은 역사상 가장 관용적인 '패권국가'다. 그리고 미국의 정책은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이다. 따라서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 점이 미국의 대북 정책이 타당성을 갖는 근거다. 우리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한.미 간에 이견이 있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하나, 방법론을 둘러싼 차이에 불과하다. 어떠한 동맹국 간에도 이견은 있을 수 있으며 극복 또한 가능하다.

*** 일반적 수혜 아닌 협력 관계

물론 동맹은 상하 또는 주종관계일 수 없다. 한국이 침략을 받았을 때 미국이 도와야 하는 것처럼, 한국도 미국이 침략을 받을 경우 이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은 일방적 수혜자가 아니며, 한.미 동맹은 상호적이다.

따라서 미국도 당연히 한국을 대등하게 대해야 하며 그 주장을 경청해야 한다. 한국이 자주성을 갖는 것은 동맹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다. 동맹국이 서로 자존을 지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파트너십도 가능하다.

다만 현격한 국력의 차이라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이해 관계의 조화와 역학에 대한 이해가 동맹의 바탕이기도 하다.

오늘의 국제사회에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나, 이해관계가 다른 1백수십개 국민국가(nation state)로 구성돼 있는 국제사회에서 '경찰 역할을 하는 국가'의 존재는 필요하다.

그리고 어느 한 나라가 갖는 총체적인 힘과 가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적어도 오늘의 세계에서 미국보다 이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물론 동맹은 절대적이 아니며 영원한 것도 아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돕는 것은 가능하나 운명을 같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하면서 우리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다는 것은 우리로선 매우 큰 자산이다.

우리의 안보.경제를 뒷받침해 주는 오늘은 물론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장래, 그리고 미국보다 더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를 발견하기 어려운 이 지역 정세의 내일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鄭泰翼(주 러시아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