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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 앓는 로사 네게 “눈 구경 처음 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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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파푸아뉴기니에서 온 로사 네게(왼쪽)가 어머니 손을 잡고 스노슈잉을 하고 있다. 네게는 눈을 처음 봤다. [김성룡 기자]

눈밭에서 달리는 건 처음이었다. 허리를 잔뜩 숙이고 오른손으로 옆에 있는 플라스틱 봉을 부여잡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신중해 보였다.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에서 온 로사 네게(17)는 “바닥이 푹푹 꺼진다. 땅이 무너질까 봐 무섭다”고 말했다. 로사는 어머니 헬렌 네게(43)의 손을 꼭 잡았다. 옆에 있던 자원봉사자들의 박수 소리에 딸은 용기를 냈다. 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을 놓은 채 로사는 눈으로 뒤덮인 스노슈잉 경기장(알펜시아 바이애슬론센터)을 스노슈[설피(雪皮)를 변형한 신발]를 신고 달렸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로사는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에 참가한 유일한 파푸아뉴기니 선수다. 10회를 맞은 평창 대회에서 처음 도입한 스페셜 핸즈 프로젝트로 한국에 왔다. 딸의 코치 겸 보호자인 헬렌은 셋째 로사가 태어난 후 눈물이 많아졌다. 로사는 한 살이 되던 해 고열로 고생했다. 의사마다 “딸이 다운증후군이다. 치료법은 없다”고 했지만 파푸아뉴기니의 수도 포트 모르즈비에 있는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찾아다녔다.

 어머니의 꿈은 소박하다. 헬렌은 “딸이 세상에 당당하게 서는 것”이라고 했다. 29일 용평돔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첫 번째 성화 주자로 당당히 나섰던 딸의 사진을 꺼냈다. 로사는 자신의 사진을 가리키며 “저게 바로 나”라고 했다. 헬렌은 “수천 명의 관중을 보고 나조차도 긴장을 해서 몸이 떨렸는데 당당하게 걸어간 딸이 너무 대견했다”고 떠올렸다.

 오전 11시35분 출발을 알리는 총성과 함께 로사는 힘차게 눈 위를 내달렸다. 선수 8명 중 가장 늦게 결승점을 통과했지만 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25m를 달린 로사의 기록은 17.46초.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다음달 2일 열리는 결승에도 나선다. 어머니 헬렌은 결승점에 들어온 딸을 부둥켜안았다. “응원을 받으며 뛰니 너무 행복했다. 앞으로 스노슈잉 선수가 되고 싶어요.” 딸이 말했다.

 지난 27일. 파푸아뉴기니에서 걸치던 얇은 옷을 입고 한국에 들어온 로사는 감기에 걸렸다. 엄마도 딸도 1년 내내 따뜻한 고향을 떠난 건 처음이라 한국의 겨울을 상상하진 못했다. 로사는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감기가 심했다. 엄마는 딸의 건강이 걱정됐다. 하지만 눈을 바라보는 딸이 행복해 보여 말리지 못했다. “하얀 눈에서 신나게 뛰어야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순 없잖아요.”

평창=김민규 기자

◆스페셜 핸즈 프로젝트=겨울 스포츠를 경험하지 못한 저개발국가의 지적장애인을 스페셜올림픽에 초청하는 프로그램 . 조직위는 이번 대회에 몽골·네팔·태국·캄보디아·파푸아뉴기니·베트남·파키스탄 등 7개국 39명을 초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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