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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순사(巡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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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호환(虎患).마마보다 무서운 게 뭘까요. "

이런 질문에 요즘 비디오 세대들은 즉각 "불법 비디오"라고 답하겠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모범 정답은 '순사(巡査)'였다. 어른들은 우는 아이를 달래며 "계속 울면 호랑이보다 무서운 순사가 잡아간다"고 말하곤 했다.

돌면서 살핀다는 뜻의 순사는 일제시대 때 경찰부장-경시-경부-경부보-순사부장-순사로 내려가는 경찰 지휘 라인 중 가장 낮은 계급, 지금의 순경이었다.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에는 종로경찰서에 근무했던 실존 인물인 일본인 미와 경부(경정)와 그 밑에서 일하는 한국인 순사들이 등장한다.

순사라는 직제가 생겨난 것은 1906년이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경찰직제를 자신들과 똑같게 하면서 최하급 경찰의 명칭을 순검에서 순사로 바꿨다. 순사가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된 것은 '헌병 경찰' 때문이었다.

일제는 식민통치 기반을 다지기 위해 헌병과 경찰을 통합 운영하며 조선인들을 탄압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을 주로 일본인 순사의 보조원으로 뽑아 써 민족간 분열을 조장했다. 합방 당시 일본인 순사는 1천7백8명, 한국인 순사보는 3천3백25명이었다.

해방 후 미 군정은 순사라는 명칭을 없앴다. 그러나 치안을 유지하고 좌익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일제 때의 한국인 순사들을 다시 임용했다. 민초들을 탄압하던 이미지가 그대로 우리 경찰로 이어진 것이다.

1946년 발표된 채만식의 단편소설 '맹순사'에는 당시 경찰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주인공 맹순사는 일제 때 8년간 경찰 생활을 하다 미 군정에 의해 다시 경찰로 임용된 인물이다.

요즘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로 검.경이 충돌 중이다. 검찰은 인권 침해가 우려되고 경찰의 수사 자질이 떨어진다는 논리로 수사권 독립에 반대한다.

검사들은 아직도 경찰을 옛날 순사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세월 몇차례 수사권 독립 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검찰은 순사 이미지를 부각시켜 경찰의 수사 주체화를 막아왔다.

경찰권이 강한 홍콩에서 최근 17개 정부기관에 대한 국민신뢰도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경찰이 청렴성.정직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사실 검찰의 경찰관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국민이 얼마나 경찰을 믿느냐가 관건이다. 경찰은 과연 순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수사권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규연 사건사회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