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예산 지원 뒤엔 ‘백서’ 남겨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담당자가 바뀌어서 확인이 안 된다.” (중소기업청 관계자)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택 전자부품 제조업체 관리자)

 “재취업을 지원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받지 못했다.” (쌍용자동차 퇴직자)

 지원금을 준 공무원도, 받은 사람도 누구 하나 3년 전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2009년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지정돼 1년간 1000억원이 넘는 세금이 투입된 경기도 평택 얘기다. 관련 기관 담당 공무원들은 자리를 옮긴 지 오래였고, 지원금을 받은 기업과 근로자 일부도 평택을 떠났다고 했다.

 평택의 ‘과거’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이달 초 경남 통영이 두 번째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지정될 것이란 소식을 접하고서다. 제도의 효율성을 따져보기 위해서였다. 먼저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에 예산 사용 내역과 효과 분석을 요청했다. 하지만 사흘 만에 받은 것은 A4용지 두 장짜리 자료가 전부였다. 그나마 지원 받은 기업·근로자에 대한 정확한 추적 조사 결과가 아니라 막연한 추정치였다.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미국·영국 사례를 알아보니 우리와는 딴판이었다. 많은 비용을 들여 수백 쪽의 집중분석 자료를 발간하고 있었다. 거의 ‘백서(白書)’ 수준이다. 이 자료를 근거로 국회에서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지원효과가 없으니 해당 지역에 대한 세제혜택을 절반 이상 축소하라”는 주장과 “새로 생긴 일자리가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지 않았으니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서는 식이다.

 중소조선업 경기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통영이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선정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통영에 효과적인 지원이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평택 지원의 결과가 어땠는지, 미흡한 점은 무엇인지, 그래서 통영을 지원할 땐 어떤 점을 보완할 것인지 도통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앞으로는 ‘고용촉진특별구역’으로 명칭을 바꾸고 관련 부처와 협력해 제대로 된 평가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매년 1~2곳을 고용특구로 지정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선거 전 대규모 정리해고가 발생한 지역을 ‘고용재난지역’으로 지정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구체적인 지원 규모나 방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고용개발촉진지역 제도와 큰 틀에서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내실이다. 제대로 된 지원을 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그 출발은 ‘기록’이다. 기록이 없으면 누군가의 ‘감(感)’이 그 자리를 채울 수밖에 없다. 그래선 통영이 ‘제 2의 평택’이 되는 걸 막지 못한다.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