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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살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몇 년전에 들은 얘기다. 서울근교에 모양이 같은 집이 두개가 나란히 있었다. 그 중 한 집은 담을 높이 쌓고 가시줄을 치고 창네는 철책을 둘러 보기만해도 무시무시하게 엄중한 도둑 방비를 했었다. 다른 한 집은 그것쯤 아랑곳없다는 듯 밖에서 뜰안이 환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울타가 허술했다. 어느 날 이 동네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담없는 집은 그냥 지나치고 담이 높은 집을 몽땅 털어갔다는 것이다. 얼마전에도 도둑 일당이 하필이면 「맹견주의」라고 써 붙인 집마다 고루 털었던 일이 있다. 이는 필연코 도둑을 엄중히 경계하는 집에 값진 것이 있으리라는 추측에서 취해진 그렇듯한(?) 행동인 것이다. 그러나 요새와서는 잘사는 집, 못하는 집, 큰 집, 작은 집 할 것 없이 모조리 담을 높이고 그 위에 창형의 철책을 두르고 또 창에는 가지 각색의 창살을 달게 되었다. 경계가 심한 곳에 오히려 도둑이 더 든다는 이치는 이제와서는 당치 않은 과거지사가 된 모양이다.
서울안의 집들이란 워낙 빽빽이 들어앉아서 숨이 막힐 지경인데 울타리를 성벽처럼 쌓아올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없는 철을 더 긁어다가 철책 투성이의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 답답한 심경은 대부분의 시민이 함께 겪는 고추일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도둑 소동이 일어날 때 그에 대한 자기 방어를 소홀히 할 수 없고 설사 도둑이 밤마다 순회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집 뒷집에서 담을 높이고 철책을 두르니 어찌 우리집만 고고히 초연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느냐 하는 일종의 군중심리도 작용하는 것 같다.
이러는 가운데 은행도 아니요, 보석상도 아닌 여염집들이 전부 「철의 장막」속에 굳게 닫히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철창생활 아니면 동물원에 갇힌 신세가 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도난방지라는 소극적 방법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도둑이 근절되는 적극적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장안의 철책은 용광로를 거쳐 쓸모 있는 생활품이 되고 위들은 철창 생활에서 벗어나 서로 믿고 사는 명랑한 사회를 이루게 될 날이 어서 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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