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너무 나간 공정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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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공정거래법 적용을 대폭 강화하는 것은 해당 기업과 시장의 강한 불신 및 반발심만 부추겨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노무현 경제 정책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

17일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뜬 '이남기, 노무현보다 한술 더 떠'라는 제목의 글 일부다. 언론사 과징금 취소 처분 파문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까지 달았다.

최근 공정위의 움직임을 보면 이런 우려가 나올 법도 하다. 16일 중견기업연합회 간담회에서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 총수 가족의 경영 전횡은 엄격히 규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공정위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공약보다 더 센 규제를 추진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기업분할 명령제 도입, 금융회사의 계열사 지분 한도 설정 등이다.

재계는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달래는데, 공정위는 더 강한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공정위가 최근 내놓은 규제안들은 현재의 인력과 체제로는 스스로 감당하기조차 힘든 정책들이 많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분할 명령제 등은 공약 사항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검토사항일 뿐 당장 실시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공정위가 새 정부 출범에 앞서 '경제 검찰'로 자리잡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李위원장은 지난해 11월 한국능률협회 강연에서 대기업 정책 완화에 대해 반대하며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정책을 크게 바꾸는 것은 국가경제를 놓고 생체실험을 하는 것과 같은 위험을 수반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대기업 정책을 강화할 때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원칙 없는 공정위 때문에 盧당선자가 제시한 '예측가능한 경제 시스템'은 점점 멀어지는 듯한 모습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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