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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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호 27면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정문 어귀에 낡은 석비가 하나 서 있다. 이른바 ‘하마석비(下馬石碑)’다. 근처 공부자(孔夫子)의 사당인 대성전(大成殿)을 지나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곳이다. 표석(標石) 앞면에 ‘大小人員過此皆下馬(대소인원과차개하마)’라는 말이 쓰여 있다. ‘대소인원(大小人員)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야 한다’는 뜻. 그만큼 신성한 곳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대소’는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한다는 뜻으로 1품 이하 관리는 궐문으로부터 10보, 3품 이하는 20보, 7품 이하는 30보 거리에서 말과 가마에서 내려 걸어가도록 되어 있다.

下馬評<하마평>

표석 뒷면에 ‘正德十四年四月建(정덕십사년사월건)’이 새겨져 있다. ‘正德(정덕)’ 14년은 조선 중종 14년, 즉 1519년이다. 최초의 하마비는 1413년(태종 13년)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지만, 아마도 성균관대 하마비는 전국 궁궐이나 종묘·항교 앞에 세워져 있는 하마비 중 가장 오래된 듯하다.

모시는 고관대작이 말에서 내려 걸어가면 마부(馬夫)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러쿵저러쿵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기 마련이다. 관직의 인사 이동이나 관직에 임명된 후보자들은 가장 재미있는 화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바로 관리의 인사에 관한 세간의 풍설을 뜻하는 ‘하마평(下馬評)’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고위 인사는 승용차를 이용할 것이고, 차량 기사들끼리 먼저 각료인사에 대해 설왕설래(說往說來)할 것이니 ‘하차평(下車評)’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하마비 바로 옆에는 영조 1742년에 세워진 ‘탕평비(蕩平碑)’도 있다. 탕평비는 노론·소론 등 붕당정치의 폐해를 경계하고, 능력에 따른 공정한 인사를 하여 불편부당한 정치를 하라는 뜻을 담았다. ‘두루두루 화합하되 편당을 짓지 말아야, 왕도가 평안하다(無偏無黨 王道蕩平)’는 말이 비석에 온전히 살아 있다.

지난주 새 정부 국무총리가 임명됐다. 내각 장관에는 누가 임명될지 벌써부터 하마평이 분분하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지만, 훌륭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기가 어디 쉬우랴. 해법은 역시 ‘탕평’이다. 국민들은 ‘100% 대한민국’을 위한 새 대통령의 탕평 인사를 기다리고 있다.
자료: 최영록 성균관대 홍보 전문위원



◆ 바로잡습니다 지난호 ‘大寒(대한)’ 기사 중 입동(入冬)과 입춘(入春)은 입동(立冬)과 입춘(立春)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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