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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우등생들도 요즘 '이것'때문에…캄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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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다음 달 25일 출범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탄생을 이끈 새누리당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 논란 등으로 벌써부터 갈팡질팡이다. 대선 승리 후 “우리를 지지하지 않은 48% 국민의 말씀을 듣겠다”(황우여 대표)던 호언은 이미 잊은 듯 보인다.

 3선(選)의 이군현(61·통영-고성) 의원은 19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의원들의 잘못을 밝히고 징계를 내리는 일을 총지휘한다. 대선 때 정치개혁이 화두였던 만큼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 의원은 중·고교 교사와 중앙대·KAIST 교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지낸 교육자 출신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가난 때문에 청계천에서 소년 직공으로 일하다 고입검정고시를 거쳐 대경상고·중앙대를 졸업한 뒤 미국 캔자스주립대(교육행정학) 석·박사를 딴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 의원의 아들 필립(32)씨는 KAIS T(기계공학) 박사로 군 복무 뒤 올 2월 MIT(매사추세츠 공대)로 포스트닥 과정을 밟으러 떠나는 ‘엄친아’다. 하지만 여느 30대처럼 취업과 결혼이 고민이다. 필립씨는 부친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경험한 적도 있다. 이번 대선과 새 정부의 과제에 대해 60대 이 의원과 30대 필립씨가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필립=공대생이 정치에 관심이 적다고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치색을 표현하는 친구들은 야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 사회와 기성세대에 대한 울분이랄까, 저항의식이 있는데 그게 진보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KAIST에서도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모여도 사회에 나가면 뭐 먹고 살아야 하는지 걱정을 많이 한다. 취업을 생각하면 일자리가 없어 캄캄하다. 결혼도 해야 하는데 가진 돈도 없다.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하는데 그것도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보수보다는 진보가 복지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보인다. 주변 친구들은 지금 상태가 잘못돼 있는 것 같으니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이군현 의원=우리도 젊을 땐 야당이었다. 우리도 데모도 하고 ‘기성세대와 우리는 다르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뭔가 바꾸면 새로운 것이 올 거란 막연한 기대를 한다. 젊은 사람들은 진보 세력과 야당이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더 갖고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실제 새누리당엔 젊은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많은 정책이 있다. 그런 정책은 오히려 우리가 더 많다. 반값 등록금 정책도 있고 0~3세 무상보육 정책도 내놓았다. 뜯어보고 분석하고 따져보면 새누리당이 야당 못지않게 젊은 세대를 걱정하고 일자리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필립=친구들은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하느라 공약을 하나하나 보고 ‘이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겠구나’ ‘보수지만 진보적인 공약도 내놓았구나’ 판단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저도 아버지 말씀을 들어야 ‘아, 이런 게 있구나’ 하고 알게 된다. 주변 친구들은 아무래도 부모 세대가 이룬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자라왔는데 막상 자기가 가정을 이루려 하니 막막한 부분이 많다. 대학 때는 등록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도 한 계단, 한 계단 나아가면 어머니·아버지가 가정을 꾸린 것처럼 나도 준비가 돼 있겠지 막연히 생각하며 노력한다. 하지만 막상 결혼할 시기가 되니 스스로 준비를 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의원=우리는 급격한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겪은 세대다. 또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격동의 시대에 고난을 이겨내고 자녀를 교육시켰다. 아들 세대인 30대는 그런 걸 체험한 세대가 아니다. 하지만 비싼 등록금과 취업 문제를 겪는다. 결혼도 어렵고 출산도 안 하려 한다. 이렇게 체험한 게 다르기 때문에 세대 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이군현 의원(왼쪽)과 아들 필립씨가 대화하다 함께 웃고 있다.

필립=기성세대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살 만하게 만들어 놓으신 분들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이 많은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세대는 어떻게 보면 부모님 세대에 비해 온실 속 화초처럼 혜택을 받으면서 자란 부분이 있다. 하지만 군대도 전방에 가든 후방에 가든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처럼 우리 세대도 일자리 문제 때문에 답답하고 불만이 생긴다. 어려움과 고민이 있다. 그런데 부모님 세대는 우리 세대에 대해 ‘의지가 없는 것 아닌가’라고 한다. 우리 세대는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부모님과 공감대가 형성 안 되면 속상하다. 그걸 대화로 풀지 못하니 이후에도 어차피 말하면 핀잔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아예 포기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의원=기성세대 입장에선 젊은이들이 좀 더 도전하고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젊은이들의 상실감이 너무 큰 것 같다. 세계는 넓다. 얼마나 글로벌한 세계인가.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부딪치려 하고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필립=아버지가 정치를 시작(2004년)하시기 전 야당 후보들을 보면 대부분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처음 나왔을 때 친근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3김(金)시대 옛날 인물들만 보다가 야당이 새로운 인물을 세우는 걸 보면 ‘저 사람은 뭔가 다른 것 같다’ ‘뭔가 바뀔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의원=정치는 현실이다. 결국 국가 지도자가 할 일은 세 가지다. 자기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 자기 국민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하는 일, 문화와 가치를 교육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일이다.

필립=(20대보다) 30대는 투표할 때 당을 본다. 물론 사람만 보고 투표하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제 주변에는 사람 이상으로 그 사람이 어떤 당에 소속돼 있는지도 많이 본다. 새누리당이 자유시장경제를 더 추구하는 정책을 내놓다 보니 사람들이 부자 정당이란 인식을 갖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부자 정당이라고 부자를 위한 공약만 낸다고는 생각 안 한다. 새누리당도 그런 이미지를 보완하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인식은 퍼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총선 때) 아버지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시장을 많이 돌았다. 열심히 뛰는 걸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었지만 명함을 받자마자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요새 (새누리)당이 정말 잘하고 있는 거냐”며 한마디하시는 분도 있었다. 서울에서도 유인물을 돌린 적이 있었는데 지역(통영-고성)보다 더 안 받아줬다. 여당이 싫다기보다 정치에 대한 회의가 많은 것 같았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싫다는 거다. 정치인들이 소명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부정부패 하는 모습을 보이니 외부에선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나라가 발전할까 고민하면서 정치를 하는 걸 알고 있다. 제가 주변에서 본 어떤 사람보다 열정적으로 일을 하신다. 하지만 부정부패 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의 이미지를 흐려놔서 그런 사명의식이 국민에게 잘 전달이 안 되고 있다.

이 의원=정치인들이 특권을 내려놔야 한다.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것들은 다 내려놔야 한다. 국회의원이라서 (책임을) 면제받는 것도 그렇게 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국회의원 징계를 논의하는) 국회 윤리특위도 외부 인사들로 구성해야 한다. 여야가 같은 국회의원을 징계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따라서 외부 인사들을 통해 국민 눈높이에 맞춘 윤리 기준을 세워야 한다. 정치인들이 싸잡아 비난받고 국회가 부정부패의 온실처럼 되지 않도록 제도를 갖춰야 한다.

필립=박근혜 당선인이 이공계 쪽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건 좋게 본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한데 이공계에 있는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제가 이공계 출신이라 그런지 나라가 일류가 되려면 이공계가 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창조과학부도) 투자를 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보고 좋게 생각한다. 박 당선인이 일을 비밀스럽게 하는 데 대해선 비판이 있다. 하지만 더 좋은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지켜보려 한다. 장기적으로 보고 평가할 거다.

이 의원=박 당선인이 인사는 시스템을 갖춰 하는 편이 좋다. 너무 갑자기 깜짝 인사를 하는 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건 핵심을 잘 잡았다 싶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일자리도 생기고 수출도 늘 거다.

필립=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화합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세대와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할 것 같다. 2030세대가 5060세대의, 5060세대가 2030세대의 가치관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으면 좋겠다.

이 의원=젊음은 희망이고 우리의 미래다. 하지만 옛말에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게 있다. 낯선 길을 갈 때는 새 말을 갖고 가는 게 아니라 길을 아는 말을 가지고 떠나야 한다는 거다. 젊은 세대는 열정과 도전의식은 있지만 지혜는 아무래도 적다. 그러니 경험을 가진 기성세대와 열정이 있는 젊은 층을 어떻게 조화시켜 끌고 갈지 박근혜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 세대 간 대통합을 위해 어떤 제도와 시스템이 있어야 할지 전문가와 국민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검토해야 한다. 결국 서로 경험을 공유하고 대화를 많이 해야 할 거다. 전화로든 SNS를 통해서든, 대화의 전제는 신뢰다. ‘무신불립’이란 신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필립=아버지 말씀대로 대화가 중요하다. 군대에 있을 때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대여섯 통 받았는데 굉장히 좋았다.

이 의원=떨어져 있으니 편지를 썼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의 자랑스러운 아들아’로 시작하는 편지를 통해 신뢰와 사랑을 보여주려 했다. 신뢰가 있다면 세대 갈등은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보수·진보 갈등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대나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있다. 진보는 꿈에 대한 열망이 있는 거고 보수는 기존에 있는 것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하다. 진보와 보수가 끊임없이 마찰하고 갈등하는 건 어찌 보면 긍정적이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진보와 보수라는 두 축의 수레바퀴로 굴러간다고 한다.

백일현 기자

정리=권은율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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