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휘청대는 애플 … 혁신 없이 미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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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애플이 수모를 당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애플 주가는 지나친 급락에 따른 서킷브레이커(일시적 매매 중지)까지 걸리며 12% 이상 떨어졌다. 지난해 9월 21일의 사상 최고치와 비교하면 불과 4개월 만에 시가총액이 3분의 1 이상 날아갔다. 애널리스트들은 “애플의 마법은 끝났다”며 때이른 장송곡을 틀고 있다. 전 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죽은 지 15개월 만의 반전이다.

 애플의 추락은 불안감 때문이다. 잡스 시절의 애플은 창의성과 혁신으로 기적의 신화를 썼다. 신제품마다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불렀다. 하지만 아이폰5는 “더 이상 혁신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부끄럽다”는 혹평을 받았다. 여전히 폐쇄성을 고집해 ‘매킨토시의 저주’가 반복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고개를 든다. “혁신 없이, 세상에 영원히 스스로 움직이는 영구기관(永久機關)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뼈아픈 충고들도 쏟아진다. 애플이 평범한 회사로 주저앉고 있다는 것이다.

 눈 밝은 IT(정보기술) 전문가들은 애플의 몰락을 삼성전자의 승리로 섣부르게 접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두인 애플이 맨 먼저 역풍을 맞았을 뿐, 전 세계 스마트폰 업계의 실적 잔치가 끝물이라는 불길한 조짐으로 해석한다. 이미 선진국들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 상태다. 남아 있는 중국 등 이머징 마켓은 고가의 스마트폰을 소화하기 어렵다. 보급형-중가-프리미엄의 풀 라인업 스마트폰의 치열한 가격경쟁과 혼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선점을 통해 초과이익을 누리던 좋은 시절은 지나간 셈이다.

 지난 산업사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기술 혁신에 성공한 회사가 우뚝 일어나면, 후발 주자들이 뒤쫓으면서 끝을 알 수 없는 산업 재편이 일어났다. 그런 혼전 속에서 또다시 새로운 기술의 파괴적 혁신이 반복되면서 거대한 산업사를 완성했다. 애플처럼 특허 둑을 쌓는다고 이런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짧게는 소비자 수요를 미리 읽고, 길게 보면 잡스처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창의성과 도전 없이는 언젠가 낙오되는 운명이다.

 산업의 흥망성쇠(興亡盛衰) 호흡이 빨라지고 있다. 어떤 기술이 새 시대를 열 파괴적 혁신의 신호인지, 아니면 단순한 노이즈(잡음)에 지나지 않는지 분간하기도 힘들어졌다. 기회가 커진 만큼 위험도 커졌다. 노키아·소니처럼 최고의 모범사례들이 순식간에 찬밥 신세가 되는 세상이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번 혁신 기업으로 비상할지, 아니면 또 하나의 역사적 실패 사례로 기록될지 기로에 서 있다.

 한국 IT 업계가 흔들리는 애플의 반사이익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뒤를 돌아보면 소름 끼치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중국의 레노버·화웨이 등은 아이폰과 갤럭시 시리즈에 버금가는 제품들을 쏟아내며 뒤쫓아 오는 중이다. 휘청대는 애플을 보면 누구도 내일을 장담하지 못하는 살얼음판이다. 혁신 없이 미래도 없다. 지금은 때이른 축배보다 다시 긴장의 끈을 당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