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허깨비 같은 내 나이 마흔 다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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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대가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세상의 어떤 미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 과연 초연할 수 있을까? 살아온 시간만큼 유혹도 많을 텐데, 유혹이 많으면 흔들림도 많고, 그만큼 후회도 많을 텐데. ‘불혹’의 나이에 값하기 위해 그들은 어떻게 버티고 참아내는 걸까?

여기, 『내가 밀어낸 물결』(세계사)이라는 제목의 시집은 사십대의 한복판에 선 사내의 고백이다. 그 고백에는 그가 그 동안 스스로 밀어낸 것들, 혹은 강제로 떠밀린 것들에 대한 심경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마흔 다섯이란 나이를 두고 ‘허깨비가 되어 벌판에 선 느낌’이라고 참회하듯 말하는 시인의 고백은 때로 격렬하지만 많은 순간 허탈하고 겸손하다.

“생의 비극적 풍경들, 풍경 속에 깃들인 삶과 죽음의 들끓는 은유들, 그곳에 나는 투항하고자 한다. 슬프고 아름다운 삶의 얼룩, 거기 스민 죽음의 실뿌리들을 환하게 밝혀보고 싶다.” (-‘자서’ 중에서)

살아가는 풍경이 제 아무리 비극적이라 한들 그것에 섣불리 대항하지 않고, 두 팔 높이 쳐들고 항복하겠다, 그리고 그 투항으로 인해 오히려 죽음과 얼룩이 만연한 어둠의 세상을 밝히겠다는 시인의 각오는 차라리 안타깝다. 과연 우리 모두 사십대 중반에 이르면 사사로운 욕정이나 그 어떤 배반감에 대해서도 쉽게 항복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그 후에 우리에게 얻어지는 것은, 남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들 물처럼 몸 눕히고 싶지 않으랴
사람의 평생이란
직립의 쓸쓸한 발걸음을 견디는 것,
물결은 제 몸을 낮춰 수평을 얻고
우리는 꼿꼿하게 몸 세워야 한다”
(-‘산정호수’ 중에서)

어쩌면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외로움에 대해 꼿꼿하게 지탱할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물처럼 누운 자세로 지내기에 중년의 삶은 너무 고단하다. ‘대출받은 전세돈을 다 갚고 나서 산을 찾았을 때, 산은 이미 붕괴되고 없었네(‘禁書’)’라고 하듯 쉴 새 없이 달려왔으나 막상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뒤돌아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중년 아니던가. 벗어나려고 기껏 달음질쳐 왔으나 ‘끝내 통화권을 이탈하지 못’(‘강화 밤낚시’)하는 미궁과도 같은 나이가 아니던가.

“산타페는 모두 길모퉁이에 있다 길모퉁이엔 사람들이 붐비고, 길모퉁이 사람들은 길의 이쪽과 저쪽을 다 보고 산다 세상은 길모퉁이와 길모퉁이로 이뤄진 것, 길모퉁이들이 물처럼 출렁거리며 세상을 실어 나른다” (-‘길모퉁이 산타페’ 중에서)

사십대는 어쩌면 산타페와도 같다. 아르헨티나 북동부의 평원에도 있고, 미국 뉴멕시코 주에도 있고,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도 있다는, ‘이쪽과 저쪽 사이의 공간’ 산타페는 길의 이쪽과 저쪽을 다 보며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시간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척추를 세우고 무언가 기다리는 사십대의 사내와 어쩐지 너무나 닮아 있다. (이현희/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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