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웬만해선 ‘유명세’를 막을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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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름이 알려지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한 가수는 TV에 출연해 “연예인이라 월세를 깎아 주었다”면서 유명세를 타고 좋아진 점을 털어놓았다. 어디 이뿐이랴. 가는 곳마다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니 기쁠 수밖에 없다. 수입도 늘어날 게 분명하다. 이처럼 ‘유명세’란 말은 이름이 알려진 덕분에 누리는 혜택을 일컫는 말로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유명세(有名稅)’는 원래 이와는 반대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탓에 당하는 불편이나 곤욕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가수·탤런트·운동선수 등 스타가 치러야 하는 어려움을 세금에 비유한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유명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이슈가 되면서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특히 연예인들이 ‘유명세’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유명하기 때문에 연예인에겐 시시콜콜한 것에까지 시선이 쏠리게 마련이다. 개인의 인격과 사생활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사례도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억울하겠지만 유명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세금인 ‘유명세’다. “사생활이 공개돼 브라운관을 떠나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등처럼 좋지 않은 일에 쓰인다.

 하지만 가수의 예에서 보듯 ‘유명세’라는 말을 좋은 곳에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명세’의 ‘세’가 세금을 뜻하는 ‘稅’가 아니라 기세를 뜻하는 ‘勢’인 줄 알고 ‘인기’ ‘이름값’ 등의 의미로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싸이 유명세에 가짜 싸이 등장” 등의 표현이 그런 예다.

 워낙 ‘유명세’가 기세를 뜻하는 말로 많이 쓰이다 보니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일반인은 물론 언론에서도 잘못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뜻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언어도 변화하는 유기체라 본다면 사전과 현실의 불일치를 바로잡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勢’로 이루어진 ‘유명세(有名勢)’를 사전에 하나 더 올리는 것을 논의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웬만해서는 ‘유명세’를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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