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최대 피해국은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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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일본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는 ‘약’이 되는 반면, 한국에는 ‘독’이 될 것이란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21일 HSBC와 크레딧스위스(CS)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일본 통화완화 정책과 10조3000억 엔(약 154조원) 규모 경기부양책의 가장 큰 수혜국은 태국과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기업들이 살아나면서 원자재·부품 수요가 증가하고 투자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동남아는 일본 기업들의 전통적인 경제협력 및 투자 지역이다.

 프레드릭 뉴먼 HSBC 홍콩 대표는 “일본 기업과 은행들이 동남아에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며 “이는 현지 자산가격과 투자, 소비를 자극해 동남아 국가들의 올 경제성장률을 밀어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이들 금융회사는 일본 환율정책의 가장 큰 피해국으로 한국을 꼽았다. 엔저로 자동차와 전자·조선 등 일본과 경합하는 산업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돼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ING그룹 아시아 리서치 책임자 팀 콘돈은 “아시아의 피 튀는 통화전쟁에서 한국이 최전선에 서 있다”고 평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한국 증시는 최근 아시아권에서 ‘나 홀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올 들어 한국 코스피지수는 21일까지 0.4% 떨어져 세계 78개 주요국 증시 중 최하위권인 70위를 기록 중이다. 양경식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지난해 11월 이후 엔화 약세, 원화 강세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수출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주식시장의 행보도 둔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은행(BOJ)이 통화완화 정책에 적극 나서도록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21~22일 열리는 BOJ의 통화정책회의에서는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로 올릴 예정이어서 엔저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해외시장 개척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미국·일본 등이 통화전쟁으로 사실상 무제한 양적 완화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도, 한국은 기준금리를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해 원화 강세를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단 물가불안이 야기되지 않는 한 한국도 금리를 내려 통화가치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1월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해 금리 인하를 예상한 시장에 쇼크를 준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대외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걷히면서 국내 경기도 완만한 회복 흐름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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