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해 달라’ 자청하는 대부업계,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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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기업은 간섭과 규제를 싫어한다’.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인 이런 말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다. 요즘 대부업계가 그렇다. 양석승 한국대부금융협회 회장은 이달 초 신년사에서 “대부업이 금융당국 감독 대상에 편입돼 명실상부한 금융업으로 인정받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갖고 있는 대부업체 관리감독권을 금융감독원으로 일원화해 보다 집중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감독 당국의 이해와도 일치한다. 금감원은 꾸준히 지방자치단체가 갖고 있는 대부업에 대한 감독권을 자신들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새 정부도 대부업체 감독기능 일원화에 우호적이다.

 대부업계의 움직임이 ‘코드 맞추기’로 비치는 이유다. 하지만 대부업계도 나름대로 주판알을 퉁기고 있다. 먼저 대형 대부업체들로선 감독 일원화로 진입 장벽을 높이면서 잠재적인 경쟁자를 줄일 수 있다.

 감독을 받는 대가로 ‘당근’을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14일 한국대부금융협회와 소비자금융연구소가 주최한 ‘2013년 대부금융업 어디로 가야 하나’ 신년 토론회에서 이런 의도가 드러났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사카노 도모야키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은 2006년 대부업 상한 금리를 29.2%에서 20%로 내린 후 신종 불법 사금융이 늘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며 “시장 기능을 축소시키는 과도한 금리 규제는 불법을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카노 교수의 발표가 끝나자 토론회에 참석한 대형 대부업체 관계자들 사이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행사 관계자는 “업계에 불리하지 않은 규제는 오히려 혜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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