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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을 투척할 때만 해도 내가 의협 회장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 2013년 계사년 새해가 밝았다. 의료계는 지난 해, 참으로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냈다. 올해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보건의료계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각 단체들은 어떠한 2013년을 계획하고 있을까. 이에 중앙일보헬스미디어는 의료계 단체장 릴레이 인터뷰를 연재한다. 각 단체의 지난해를 돌아보고, 신년계획을 들어본다. 첫 번째는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이다.

지난 2011년 12월 10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임시대의원총회가 아수라장이 됐다. 인사말을 하려고 단상에 오른 당시 의협 회장의 얼굴 정면에 계란이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총회장에는 욕설과 고성이 난무했다. 얼굴과 양복이 계란으로 뒤범벅 된 회장은 서둘러 퇴장했다. 의협 최고 권력을 향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그리고 3개월 뒤, ‘계란 투척’의 장본인이 제 37대 의협회장으로 당선됐다. 무려 58.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 바로 지금의 의협 노환규 회장의 이야기다. 노 회장 역시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취임 후 그는 의료계의 대표 ‘트러블 메이커’답게 파격적이고 저돌적인 행보를 보였다. 노 회장을 직접 만나 취임 후 의협의 변화와 성과, 그리고 인간 노환규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8개월 의협 회장으로서의 점수는 80점”
사실 노 회장의 취임은 순탄치 않았다. 계란 투척’사건을 이유로 의협 중앙윤리위원회가 ‘회원권리정지 2년’이라는 징계를 내려서다. 우여곡절 끝에 의협 수장의 자리에 오른 그는 취임 후 지난 8개월의 시간을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를 터였다.

“돌이켜보면 시간이 참 빠르다고 느껴진다. 처음엔 물론 힘든 일이 많았지만, 다 잘 될 거라 예상했다. 제 별명이 바로 ‘노긍정’이다.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이어서 큰 걱정은 없었다.”

지난 해 5월 1일 취임한 노 회장은 참으로 바쁜 한 해를 보냈다. 포괄수가제 반대와 수술 거부, 보건복지부와의 마찰, 의료법을 규탄하는 서울역 집회, 전국의사가족대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탈퇴, 대정부 투쟁과 나 홀로 단식투쟁…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그는 취임 후 8개월 동안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할까.

“점수를 매긴다면, 집행부의 노력은 90점 이상이라고 본다. 실제 성과로 따지자면 80점 정도? 너무 후한가? (웃음) 지난해 새 집행부가 정부를 상대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성과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다. 그동안 보건의료정책을 만들 때 의협은 항상 중심이 아닌 변방에 서 있었다. 정부와 전문가단체인 의협이 주종·상하 관계였던 것이다. 의협의 지위를 높이는 게 가장 큰 숙제였고, 이에 대해선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다고 본다. 의사들의 자정 의식을 환기하고, 의료계가 정치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며 정치세력화를 이룬것도 중요한 성과다. 다만 회무 경험이 없어 시행착오를 겪은 점과 16개시도의사회장단과의 소통이 미흡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해 노 회장은 정부와 부단히 싸웠다. 이렇게 열심히 투쟁한 회장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저러다 정부와 의료계의 사이가 영영 틀어져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갈등의 절정은 건강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탈퇴였다. 지난 해 5월 포괄수가제 시행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의료계의 말을 묵살하는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더 이상 들러리 역할을 하지 않겠다”며 전격 탈퇴를 선언했다. 건정심의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돌아가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그리고 7개월여가 지난 지금, 의협이 조만간 건정심에 복귀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일부 회원들의 반발처럼, 건정심에 복귀할 실질적인 명분은 부족하다. 하지만 최근 복지부 임채민 장관이 ‘잘못된 제도에 대해 개선하겠다’는 노력 의지를 보였다. 변화의 가능성을 엿봤기 때문에 의협도 건정심 복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토요일휴무 전일 가산제’ 적용이 확정돼 건정심에 복귀한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잘못됐다. 가산제 적용은 아직 논의 과정이고, 정부도 이에 대한 타당성을 인정했다. 새 정부 출범 전, 1월과 2월 두 번의 건정심이 남았다. 언제 복귀할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의사와 국민간의 틀어진 관계, 양심이 아닌 구조적 문제”
노 회장 취임 후, 의사들은 잘못된 의료정책을 바꾸겠다며 필사적으로 정부에 대응했다. 포괄수가제 시행을 막기 위한 수술거부 결의도, 개원의 60%의 참여를 이끌어 낸 토요일 휴진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환자를 볼모로 한 ‘밥그릇 싸움’으로만 바라봤다. 의사들은 국민의 건강을 위한 투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국민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노 회장은 이에 대한 씁쓸함을 표했다. 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진 데에는 ‘의사와 정부의 공동 책임’이 있다는 것.

“한 때 정부는 의도적으로 의사를 깎아내리는 전략을 구사했다. 국민들이 의사에게 등을 돌려야 정부가 의료계를 다루기 쉬었던 탓이다.”

하지만 정부만 탓할 문제는 아니다. 과잉진료, 불필요한 검사 실시, 무성의한 1분 진료, 무조건적인 비급여 처방 등 일부 의사들의 비양심적인 진료 행위는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의료소비자 권익보호 방안에 대한 소비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3명은 진료비가 부적절하다고 여겼다. 노 회장이 가장 답답해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만약 도로가 U턴할 수 있는 구간이 없이 50km 쭉 이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은 불법 유턴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즉 구조의 문제다. 현재 의사가 1분 진료를 하든, 1시간 진료를 하든 진료비는 똑같다. 정부가 권장하는 진료시간은 15분이다. 이를 지키면 한 달에 605명을 진료할 수 있고, 한 달 매출은 640만원이다. 여기서 임대료·인건비 등을 빼면, 결국 의사는 500만원의 손해를 보게 된다. 이러한 구조 아래서 정상적인 진료가 가능하겠는가. 결국 ‘저수가’의 문제다. 절대 의사의 양심과 윤리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은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현행 저수가 제도 아래서는 정직한 의사는 병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소수의 비양심적인 의사가 과잉진료를 행하는 게 아니라, 거의 대다수의 양심적인 의사들이 제도·구조적인 문제 탓에 윤리적인 행위를 하지 못한다는 게 노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국민도 8천원 더 내고, 좋은 진료 받는 게 낫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새해 노 회장이 풀어내야 할 쉽지 않은 숙제이기도 하다.


‘정계 진출 위해 쇼하는 것?’ 노환규 회장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

그의 저돌적인 행보 탓일까? 노 회장을 바라보는 다양한 오해와 편견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노환규는 무섭다’. 어떤 이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후원의 밤 행사에 참여한 노 회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의료계 뉴스에 등장하는 노 회장은 피켓을 들거나 머리에 띠를 두르고 1인 시위하는 강경한 모습이 대다수다. 사진 속 그의 표정은 입을 꾹 다문 채 매우 비장하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며 노 회장이 사진기자에게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온 사진으로 부탁한다”며 거듭 당부한 이유이기도 하다. 노 회장이 억울해하는 자신에 대한 오해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듣고 나서 가장 어이없었던 게 ‘노환규는 빨갱이’라는 소리다. 1인 시위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인 것 같다.(웃음) 난 과거에 보수시민단체의 대표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빨갱이라니…하도 그런 소리가 들리니까, 보수시민단체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이 전화해서 ‘변심했냐’고 야속한 감정을 표현한 적도 있다.”

항상 튀는 행동으로 이슈를 몰고 다니는 그에게 “정치하려고 일부러 쇼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존재한다. 정계 진출 의사에 대해 묻자, 노 회장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굉장히 어이없는 소리다. 내가 정치할 생각이 있었으면, 2년 전 의협 회장에게 계란을 던졌겠냐”고 반문하며 “이미 예전에 정계 진출 기회가 있었다. 뜻이 있었다면, 인생에 오점으로 남을 ‘계란 투척 사건’을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말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자’며 계란 투척 사건에 대해 말을 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년 전 그날, 노 회장은 계란을 던질 생각이 아니었다. 미리 계란을 준비해 가지도 않았다. (다만 멸치액젓만 준비해갔다.) 당시 의협 회장은 회원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만성질환관리제(선택의원제)를 통과시켰다. 회원들의 동의 없이 공제회를 법인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 당사자가 단상 위에 오른다니 노 회장은 가만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준비해 간 멸치액젓을 단상에 뿌렸다. 그러자 의협 직원들이 제지하기 위해 그를 넘어뜨렸다. 그것이 화근이 됐다. 노 회장은 “넘어져 화가 난 상태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 누군가가 가져온 계란 네 판이 보였다. 거기서 두 알을 집어와 던졌다”며 “그날 날 넘어뜨리지만 않았어도 계란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그날, 아수라장이 된 그 현장에서 일부 회원들의 지지 속에, 즉흥적으로 의협 회장에 출마할 것을 결정했다.

“출마를 선언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당시의 난동으로 징계 받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회장 후보가 되면, 쉽게 징계를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의협 집행부가 골탕 좀 먹어봐라’ 하는 생각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그것이 출마 이유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그리고 선택의원제가 의협 회장 단 한사람의 권력만으로 결정되는 걸 보고, 임의단체는 아무리 인원이 많아도 힘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의협 회장이 되자’고 결심했다. 그런 내가 회장이 될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이렇게 늘 투쟁과 논쟁의 중심에 서왔던 그는, 가정에서는 지극히 평화주의자다. 연애 8년, 결혼 생활 28년 동안 아내와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때 과외에서 싹튼 사랑을 이어온 ‘순정파’이기도 하다.

“흉부외과 의사여서 집에 들어갈 때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게 비결이랄까. (웃음) 사실 난 천사 같은 아내와 아들을 뒀다. 바빠서 아들과 놀이동산 한번 가본 적 없다. 그럼에도 내가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걸 보고,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해주는 착한 아들이다.” 늘 강경한 모습만 보였던 노 회장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2013년도 의협의 대정부 투쟁은 계속 된다”
지난해는 시작에 불과했다. 올해는 노환규 집행부의 성패를 판가름 짓는 중요한 해다. 노 회장은 어떤 목표를 세우고 있을까.

“우선, 보건의료계의 선도적인 역할을 할 계획이다. 의사·약사·간호사 등 모든 직역 단체와 함께 올바른 의료정책 정착을 위해 앞설 것이다. 또 지난해는 의협의 위상 정립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가시적인 성과를 목표로 할 것이다. 비현실적인 수가의 조정, 의사의 소신 진료를 방해하는 제도 개선, 의사가 경영이 아닌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대정부 투쟁도 계속된다. 머리에 띠를 두른 시위나 집회의 의미가 아니다. 정부와의 대화, 대국민 홍보 등과 같이 올바른 의료제도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이 대정부 투쟁에 속한다. 노 회장은 “대정부 투쟁의 불씨는 언제나 살아있다. 장기적인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 국민에게 존중받고 진료에만 매진하는, 자부심을 지닌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좋은 제도가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 노환규로서의 꿈은 이렇다. “내가 죽은 다음에,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의료제도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많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바로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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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기자 okafm@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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