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화목한 가족사진, 그 뒤에 숨은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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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고려원북스
352쪽, 1만3500원

‘가족 사진은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이야기를 여는 이 매혹적인 문장의 충격은 컸다. 뒤이어 가늠할 수 없는 가족의 심연, 그 심연을 더듬어나가는 추리소설의 거장 토머스 쿡의 솜씨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에릭 무어는 대학 강사인 아내 메러디스와 중학생인 아들 키이스와 더할 것 없이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키이스가 마을에서 실종된 여덟 살 소녀 에이미의 유괴 용의자로 지목되며 가족의 삶은 백척간두에 선다.

 “일이 망가지는 시점은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할 때”라는 메러디스의 말처럼 매끈하게 보였던 가족의 일상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쩌면 균열은 이미 곳곳에 있었을 것이다. “인생의 절반이 부정이며,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서조차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못 본 체하기로 결정한 것임을 알게 됐다”라는 에릭의 독백과 같이 우리가 고개를 돌렸을 뿐이다.

 마지막까지 팽팽함을 잃지 않는 이야기의 구조만큼이나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은 따로 있다. 의심과 불신이 사람들의 관계를 침식하고 잠식해, 회복할 수 없는 파탄에 이르게 하는지를 건조하면서도 서두르지 않는 문체로 그려내는 작가의 침착함이다. 또한 ‘이해’라는 말의 홍수 속에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믿음이 얼마나 부박한지를 고민케 하는 문제의식이다.

 “의심은 산(酸)이다. 그게 내가 아는 한 가지다. 산은 물건의 매끄럽게 반짝이는 표면을 먹어 치우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의심은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고, 오랜 신뢰와 헌신의 수준을 차례차례 부식시키며 더 낮은 수준으로 내려간다. 의심은 언제나 바닥을 향한다.”

 이런 에릭의 말처럼 의심에 사로잡힌 등장인물들은 불신의 덫에 갇힌 채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인간 존재의 어리석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붉은 낙엽’이라는 제목은 일종의 은유로 읽힌다.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아 나무의 잎사귀가 떨어지듯, 의심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는 식구들이 가족이라는 나무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치닫는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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