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납편지 속에 든 무례한「낙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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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건전하고 명랑한「펜팔」을『이 다음 어머님의 무덤의 잔디를 어루만진들 그 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나의 글이 홍실란에 실린 일이 있었다.
그 후 각지에서 낮 모르는 분들로부터 20여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새소리로 하루해가 뜨고 밤이 지새는 적적한 두메 산골 아가씨인 나에게 새삼 세상이 넓다는 걸 알려준 숱한 사연들-. 그런데 나는 처음 몇 통의 기쁨이나 호기심과는 달리 장난 섞인 자만과 예의에 벗어난「펜팔」들에 실망을 느끼고 말았다.
첫번부터 사랑한다는 등 찾아오겠다는 성실파에, 몇 분이 미납으로 부쳐오고 미인「노이로제」라도 걸렸는지 자기 나름대로 지상 최대의 미녀화한 분도 있었다. 불행히도 나는 무성한 보리밭 고랑을 헤치다 억세고 마디가 진 손을 가졌고 매끈해야 할 살결은 햇볕에 타 검은데다 거칠기 머슴 같은 걸.
남의 글을 보고「펜·레터」를 쓸 때는 장본인이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후 정중한 얘기를 보냈으면 싶다. 한낱 호기심에 찬 허영이거나 한가한 시간을 주체 못하는 듯한 심심풀이의 낙서는 삼가주길 바란다.
이런 일은 비단 나만이 당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신문에 여자의 이름과 주소만 실리면 엉뚱한「펜·레터」를 받고 불쾌해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최주연·21세·미혼·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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