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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검·경 정화 노력 지금처럼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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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문병주
사회부문 기자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에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20여 명이 들이닥쳤다. 이 경찰서 경찰관들은 본청 경찰관들의 유례없는 대규모 방문에 “무슨 일이냐”며 의아해했다. 이들은 이 경찰서 소속 경찰관 한 명이 음주단속에 걸린 것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서울청 감찰팀이었다. 이 사실은 삽시간에 서울시내 전 경찰서로 알려졌다. 일선 경찰 사이에선 “해도 너무 한다”, “징계 통보를 하면 될 걸 거대 비리가 터진 것처럼 난리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경찰청은 모든 경찰에 경고장을 보냈다. ‘음주운전 적발 등 가벼운 사안일지라도 경고 없이 바로 징계를 할 테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본청 간부들에겐 일선에서 위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해당 부서 지휘 간부가 사태 해결을 책임지라는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감찰을 더 강화하면 했지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엄포도 놨다.

 검찰 역시 비슷한 분위기다. 서울 동부지검 전모(32) 검사의 성추문에 연루된 피해자의 사진 유출과 관련해 수사 대상이 된 24명 외에도 수십 명의 검사와 수사관들이 사유서를 써내야 했다. 이 여성의 사진을 유출하지 않았더라도 받아 본 사람 모두가 감찰조사를 받은 것이다. 한 검찰 수사관은 “10년 넘게 검찰에 몸담았지만 이처럼 가혹하게 감찰을 진행하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어디 가서 자부심을 갖고 검찰청에서 일한다는 말을 하기 힘들게 됐다”고 덧붙였다.

 내부 문제에 대해선 덮거나 관대한 처분을 내렸던 과거 검찰과 경찰의 행태를 볼 때 서로 자체 정화 경쟁을 벌이는 것은 일단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개운치가 않다. 차기 정부의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서로 책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가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은 4조원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56·해외 도피) 관련 비리 의혹이나 서울 강남의 유흥주점 수사 등에서 서로의 비리를 캐내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내부 직원의 비리가 드러날 경우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뇌물 검사’, ‘성추문 검사’ 사건이 연이어 터진 이후 검찰은 개혁 대상으로 떠올랐다. 향후 수사권 조정에서 경찰에 상당한 권한을 넘겨줘야 할 상황까지 몰렸다.

 경찰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엔 현직 경찰이 도둑과 짜고 우체국금고를 턴 사건까지 발생했다. 조직이 크고 사람이 많으니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른다. 권력기관이 내부 비리에 대해 엄격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스스로 투명해지기 위한 노력은 후퇴하지 않아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깨끗해지고자 노력하시라”는 말이 입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