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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히스토리] 마이애미 히트 (5)

중앙일보

입력

◇ 베이비 조던, 히트에 등장

단 3경기로 끝났지만 히트는 플레이오프라는 소중한 경험을 갖고 91~92시즌을 마감했다. 그들은 다음 시즌 좀 더 나은 성적을 기대했고 1992년 신인 드래프트를 맞이한다.

플레이오프 진출 팀이긴 했지만 히트의 1라운드 지명권은 그렇게 낮은 순위는 아니었다. 이해의 신인 드래프트에는 섀킬 오닐, 알론조 모닝, 크리스챤 레이트너, 짐 잭슨 등을 비롯한 유망주들이 많이 참가해 어느 때보다 신인 선수를 통한 전력 보강의 기회가 좋았다.

히트는 1라운드 12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어 오닐이나 모닝 그리고 레이트너, 잭슨 등의 초특급 선수들을 데려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준척 급에 속한 선수들도 그 기량을 인정받고 있어 팀은 내심 앞선 10, 11순위의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애틀란타 호크스, 휴스턴 로키츠의 지명 결과를 주시하고 있었다.

호크스와 로키츠가 각각 스탠포드대학과 알라바마대학 출신의 포워드 아담 키프와 로버트 오리를 지명하자 히트는 그야말로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내심 그들이 노리고 있던 선수들 중 한 명이던 남가주대학(USC) 출신의 가드 헤롤드 마이너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히트는 월트 윌리엄스, 토드 데이 등 슈팅 가드를 선발할 생각이었는데 이들이 앞선 순위로 각각 새크라멘토 킹스, 밀워키 벅스에 지명되었고 당연히 유망주 가드 중 한 명이던 마이너도 호크스나 로키츠에서 데려갈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마이너는 히트의 지명 순서까지 남아 있었고 팀은 이를 행운이라 생각하며 그를 주저 없이 데려가게 된다.

당시 마이너는 그 해 드래프트에 참가 한 선수 중에서도 상위 10위안에 들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더욱이 플레이 스타일과 외모에서 마이클 조던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 '베이비 조던'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었다.

특히, 대학 시절 백 넘버가 조던의 23번과 같았고 왼손잡이라는 장점은 예나 지금이나 스타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는 미디어와 NBA의 방향과도 부합되어 드래프트를 통해 1, 2, 3순위 지명자인 오닐과 모닝, 레이트너 만큼 주목을 받으며 히트에 입단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드래프트에서도 마이너의 기량에 대해 의심을 품었던 사람들은 있었다. 또한 기존의 글렌 라이스, 윌리 버튼, 케빈 에드워즈, 스티브 스미스까지 2, 3번 위치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는 선수가 많은 팀에 마이너가 들어왔다는 점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했다.

◇ 베이비 조던, 그러나 실패한 드래프트

마이너가 가지고 있던 최대 약점은 단조로운 공격 루트였다.

NBA에서 그가 경험한 것은(다른 신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대학 시절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수비였고 늘어난 슈팅 레인지에 대한 적응 또한 만만치 않았다.

당장 경기에 나서는 경쟁부터 해야 할 처지의 마이너였지만 의외로 출전의 기회는 쉽게 찾아 왔다.

히트가 92~93시즌을 시작하자마자 스티브 스미스와 케빈 에드워즈가 줄줄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되었고 그 자리를 마이너가 매웠던 것이다. 팬들과 팀은 대학 시절 그가 보여주었던 조던과 흡사한 플레이를 보여주길 원했지만 마이너는 대학 시절과 다른 평범한 점프 슈터의 모습을 보였고 그나마 속공 찬스에서나 '베이비 조던'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첫 프로 시즌이던 그해 마이너는 글렌 라이스와 브라이언 쇼의 백업으로 73경기에 나와 평균 10.6득점을 기록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형편없는 성적은 결코 아니었다.

사실 마이너의 문제는 감독인 케빈 로커리와 있었다.

주전의 확보와 출전 시간을 놓고 그와 감독은 의견 충돌을 자주 보였다. 로커리가 마이너를 선발로 내보내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의 수비 능력이 모자란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베이비 조던' 마이너의 인기는 계속 높아만 갔다. 특히, 1993년 올스타전 부대행사로 열린 슬램덩크 컨테스트에서 그가 우승을 차지하자 팬들은 더욱 환호했다. 또한 유명 운동화 제조회사는 그의 이름을 딴 의류와 신발을 제조키로 결정했고 광고판이 마이애미 시내 중심가와 고속도로에 세워지는 등 왠만한 스타 선수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게 된다.

이러한 마이너에 대한 처사는 올스타도 아니며 그렇다고 소속팀의 주전 맴버도 아니고 경기 당 10점을 갓 넘길까 말까한 신인 선수에게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팀내에서도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마이너는 오히려 이러한 일로 인해 더욱 조급증을 내게 되었고 로커리와의 감정의 대립은 점점 커지고 만다.

92~93시즌 히트는 결국 스미스, 버튼, 에드워즈의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36승 46패를 기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채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2라운드 지명선수인 센터 맷 가이거(42순위), 아이제아 모리스(37순위)와 1대1 트레이드로 팀을 옮긴 베테랑 존 샐리의 활약은 로니 사이클리 혼자 지키다 시피 했던 골 밑의 전력을 한층 두텁게 했다.

히트는 넘쳐나는 가드와 포워드 진의 정리라는 숙제를 남긴 채 다음 시즌을 기약하게 된다.

* (6)편에 계속

류한준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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