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끄는 ‘테디베어씨어터 백조의 호수’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6일, 막바지 공연 준비에 한창인 김보람·박성룡·성부연(왼쪽부터) 배우를 대학로예술극장 연습실에서 만났다.

연말?연초 다양한 버전의 ‘백조의 호수’가 쏟아지고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관객의 고민도 크다. 각각을 이끄는 발레단이 다르다는 것 외에 특별한 차이점을 찾기 어려워서다. 그 중 유독 눈길이 가는 한 작품이 있다. 전형적인 발레 공연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주먹만한 얼굴에 고개를 치켜든 전통적인 발레리노 대신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구르고 어깨보다 넓은 머리를 짊어진 괴이한 발레리노가 나온다. 모두 ‘테디베어씨어터 백조의 호수’ 이야기다.

 테디베어씨어터 백조의 호수는 국내에 없던 인형발레극이다. 테디베어를 비롯 백조, 여우, 토끼, 멧돼지 등 다양한 동물 탈을 쓴 전문 발레 무용수들이 극을 이끈다. 성인에게도 어려운 장르가 발레이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려면 장치가 필요했다.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숙제도 두 배로 늘었다. 마법사 로트바르트 멧돼지를 연기하는 배우 박성룡씨는 누구보다 멧돼지 전문가가 됐다. 멧돼지 사진과 동영상을 감상하는건 그에겐 공부다. “자료를 분석하면서 멧돼지가 유독 킁킁대고 뒷걸음질을 많이 친다는 걸 알아냈다”는 그는 발레 동작 곳곳에 이 같은 요소를 집어넣었다. 우아한 발레 동작과 멧돼지의 킁킁거림이 어떤 조화를 이룰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발레 동작 역시 정석을 따르지 않는다. 클래식 발레는 ‘정답이 있는 춤’이라 불릴 만큼 감정마다 연기해야 할 동작이 정해져 있는 편이다.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해온 무용수들에겐 가슴을 활짝 열고 고개를 도도하게 치켜드는 자세가 몸에 배어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발레를 지루해할 아이들을 위해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 안무의 뼈대는 살리되 세세한 부분에서 동화적 요소를 가미했다. 뒤뚱뒤뚱 걷는 테디베어와 점핑 스텝이 돋보이는 개구리, 날개 짓을 화려하게 부각시킨 백조와 천둥오리의 2인무가 그것이다. 큰 토끼 버니 역을 맡은 성부연씨는 “뮤지컬 ‘캣츠’에서의 연기 경험이 이 작품에서 커다란 밑거름이 됐다”고 밝혔다. 발레리나로서 바닥을 기고 뒹굴면서 연기하는 것은 그전까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캣츠에서 동작의 틀을 깬 과감함을 배운 것이다.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다 1차원적으로 표현 할 필요가 있는 이번 작품에는 이만한 경험도 없는 셈이다.

탈 쓰고 온몸으로 감정 표현하는 발레리나

 1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코스튬은 이 공연의 가장 큰 볼거리다. 동물을 단순히 캐릭터화한 것이 아니라 실물 그대로를 담고자 노력했다. 동물이 살아 움직이듯 표현하기 위해 재질까지 신경 썼다. 하지만 실물과 똑 닮은 탈을 구현한 만큼 배우들의 희생도 뒤따른다. 시야 확보의 어려움과 호흡량의 부족으로 연습 초기엔 어려움이 컸다. 배우들이 찾은 해결책은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것. 동작과 동선이 오롯이 몸에 익도록 연습 또 연습했단다. 의상팀과 소통을 거듭하면서 점차 진화된 탈의 모습도 갖췄다.

 동물 탈의 일관된 표정도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극에 방해가 됐을 법 하지만 정작 배우들은 이를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동물 탈의 표정은 한가지지만, 그 안에서 배우가 짓는 표정에 따라 그 감정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되리라 믿는다. 발레는 온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임처럼 동작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도 감정 전달을 도와주는 요소 중 하나다.

 테디베어씨어터 백조의 호수는 재작년에 잠시 워크샵 무대를 가졌다. 작은 토끼 바니역의 배우 김보람씨도 당시 무대를 빛낸 주역이었다. 김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치 아이돌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다. 무대 위에서 바라본 아이들의 표정에서 감격스러움을 읽은 것이다. “아이들은 마치 환상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어요. 저희 무대를 보고 발레리나가 되길 희망한다는 후기를 읽으니 ‘우리 무대가 한 아이의 꿈이 됐구나’ 싶어서 저 역시 감격스러웠습니다.”

 공연의 막은 다음 달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오른다. 작품의 주요 관객은 4살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의 어린이들이다.

<글=한다혜 기자 blushe@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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