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팔아도 세금 부담 … 집값 떨어진 요즘엔 생돈 깨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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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산동의 전용면적 84㎡ 아파트(4억5000만원)에 살던 장모(39)씨는 직장을 대전으로 옮기게 돼 최근 직장 인근의 아파트를 알아봤다. 살던 집을 팔면 여유자금이 충분했는데도 그는 전셋집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새로 집을 살 때 내야 하는 1000여만원의 취득세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장씨는 “앞으로 집값이 별로 오를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세금이 아까웠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은 거래비용이 국내 주택 거래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금이 부담돼 집을 사고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집값이 많이 오를 땐 세금보다 집값 차액이 커 세금 걱정을 하지 않지만 요즘처럼 집값 약세기엔 세금이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다. 세금을 내고 나면 사실상 손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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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집을 사고팔려면 상당한 세금을 각오해야 한다. 집을 살 때 집값의 최고 4%를 취득세로 내야 한다. 현재 9억원 이하(1주택자)는 2%의 경감세율이 적용되지만 올 연말까지 한시적이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지역·가격별로 세율이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1~2% 선이다. 태경회계법인 김상운 대표는 “선진국들은 주택 거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거래세를 가볍게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다른 나라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집을 팔 때 내는 양도소득세 부담도 만만찮다. 우리나라는 1년 이상 보유한 집을 팔 경우 시세 차익의 6~38%를 세금으로 낸다. 1년 미만은 50%다. 미국의 경우 1년 이상 집을 보유하면 최고 15%를 낸다. 보유기간 1년 미만은 10~35%가 부과된다. 뉴질랜드는 양도소득세가 아예 없다. 그 때문에 국내에서는 양도세가 부담스러워 집을 팔고 싶어도 내놓지 않고 그냥 끌어안고 있는 경우가 허다해 주택시장에 매물이 확 줄어든 상황이다.

 집을 두 채 이상 갖고 있는 다주택자의 세금은 더 무겁다. 세율이 50~60%다. 현재는 예외적으로 일반세율이 적용되고 있지만 이 역시 올 연말까지다. 미국의 경우 다주택자라도 별도의 세금을 중과하지 않는다. 되레 1가구 1주택자(실거주 시)에게 시세차익 50만 달러(약 5억3000여만원)까지 면세 혜택을 준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다주택자들의 주택은 임대시장에 공급돼 전세난 안정에 도움이 된다”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임대주택 공급량을 줄이는 효과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과세방식도 다른 나라와 차이가 난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지역별로 세금 적용 기준이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선 일률적이다. 한국조세연구원 조영훈 선임연구위원은 “지역 사정에 따라 세율을 정하고, 납부 세금에 대한 혜택이 지역사회로 돌아와야 세금에 대한 불만이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리영 책임연구원은 “높은 거래·보유세는 집값이 많이 오른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세금이라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세금 부담을 줄여야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대출장벽도 높은 편이다. 소득을 기준으로 대출 한도를 정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규제지만 우리나라에선 50~60%를 적용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도 우리나라는 최고 60%에 머물고 있다.

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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