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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는 정치의 빈곤서"|홍종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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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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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국회는 다시 열린다. 4월이라 꽃피는 봄이요 만물이 생동하는 아름다운 새 계절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치는 어디로 어떤 꽃을 피우며 어떤 발전의 새 힘을 가져오게 할 것이냐고 생각할 때 우울하기만 하다. 바로 한 주일 전 국회는 아슬아슬한 파국적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만은 다행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날치기」니「변칙」이니 하는 상식 밖의 소란 속에 묻어둔 추경예산안의 처리도 다시 문제가 아니 될 수 없을 것이고 또 외자도입(외자도입)에 따르는 지불보증안에도 상당한 파란이 예상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이 나라의 중대한 정치적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보다도 지금 일반국민의 심증을 살핀다면 국회내의 여·야의 어떤 종류의 싸움보다도 부정부패의 악취가 도처에 코를 찌르고 있다는 사태를 더 중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세금을 받아서 횡령하지 않으면 고리채로 놀려먹는다. 수입인지를 위조해먹는다.
소매치기와 경찰이 어울려 도둑의 돈을 나눠먹는다. 그러고도 나눠 먹은 돈의 액수가 적으니 잡아넣었던 경찰을 놓아준다.
또 홍삼을 밀수출해 먹은 것이 너무도 크다고 했다. 그러나 「고위층」 에서는 수사도중의 검사를 불려 올렸다고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부패는 지금 이루 손을 꼽아 헤아릴 정도가 아니니 이러고서야 국가의 체면은 어떻게 유지되며 정부의 면목이나 정치의 위신이 어떻게 설 수 있을 것인가. 부정부패야말로 어떤 종류의 외부의 적보다도 무서운 내부의 적이요 호열자나 독감 이상으로 국가와 국민생활을 파멸케 하는 가장 더럽고도 무서운 악균의 국가적 질병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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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부정부패가 수사당국에서 적발되어 신문에 보도되고 있는 그 정도에 국민의 관심은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신문에 보도되는바 소위 「고위층」이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또 진행 중의 수사가 중간에서 흐지부지되고 있지 않느냐. 그래서 결국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는 것은 모두 「송사리떼」에 불과하니 이러고서야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는다는 일은 말뿐이 아니냐 하는 것이 국민의 탄식인 것이다. 그런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여기서 따질 바 못 될 것이다.
아무리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세상이 그렇게 믿어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무서운 사실이 아니겠는가.
소위 「고위층」이 어떤 부류의 인물들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 의혹은 정치를 요리하는 정객 정당에 대하여 한층 더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명년의 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선거준비 내지는 이면공작이 상당히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인 모양인데 정치를 요리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모든 부패를 소탕할 수 있으면서도 부패와 가장 관련이 깊은 것이 사실이고 또 부패를 가져오는 시기가 선거때라는 것도 누구도 부인치 못할 사실로 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선거자금」「정치자금」이란 것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떤 정도로 어떻게 뿌리게 되느냐하는 것이 부패와 부정의 가장 크고 험악한 근원이 되어있고 그러한 부패가 정치를 요리하는 「고위」로부터 아래로 흘러 사회의 물을 온통 흐리게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국민들의 소견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결국 오늘의 부정부패라는 문제는 중앙이나 지방 관공서의 공무원의 단속여부에 있다기 보다도 정치를 요리하는 근원 중의 정객·정당 등등의 정치의 빈곤 내지는 경치의 부패여부에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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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국회에 바라건대 여·야는 그 정치세력을 여와 야의 폭력다짐과 같은 세력싸움에 골몰할 것이 아니고, 오늘의 부패를 숙청하기 위한 진정한 건설적·발전적 정치 세력으로서 그 힘을 다하여 부패와 싸울 것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추가예산안의 처리나 지불보증안의 처리란 것은 사리에 맞도록 서로 국가적 견지에서 토론한다면 그 처리에 그처럼 큰 싸움을 벌일 일도 아닐 것이다. 들리기에는 지불보증안의 처리가 직접 개인적 단체의 정치자금과 관련을 가진 야단스러운 문제이리라고도 한다. 이런 문제로 해서 싸우면 싸울수록 그 어느 편이든지 세상에 추문을 입증하는 이상의 별 다른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돈줄에 목을 메고 싸우는 것이 정치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처럼 정치가로서 창피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어차피 내각을 대폭 혹은 전면적으로 개조할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의 부정부패는 그 뿌리가 잔뿌리에 뿐 아니고 상당히 위로 올라가서 굵은 비리에까지 썩어 곪아 들고있는 모양이니 행정부내의 침체된 흐린 공기를 일소하고 그와 동시에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와 존엄을 좀 높일 도리를 차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행정부의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
국회, 특히 여당도 행정부를 함부로 제집안방 같은 생각을 갖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명년의 선거를 앞두고 국회와 청부는 어느 때보다도 정치의 본래의 정신을 발휘하도록 힘쓰되 부패와 부정의 소량을 오늘 우리나라 정치의 최대의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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