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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 된 국회를 탓한다 선거에만 급급‥‥저버린 국민의 신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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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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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날치기」라느니 「새벽의 기습」이라느니 하는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72억원이라는 세금의 증액이 포함된 1백77억원의 추가예산안이 국회법에 의한 심의절차를 제대로 밟지 못하고 여·야 다섯 명의 특별위원회라는 이름 밑에 단 세 사람의 여당사람들만으로 심의를 보게 된다는 이러한 국회 밑에 살아야 하는 국민들의 신세야말로 처량하고 기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야의 단 다섯 사람의 특별위원회는 예사결산위원회의 의결로써 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고 하더라도 안건의 어느 특별한 부분에 국한되어야 할 것이지 부별(부별)심의도 생략한다는 전제하에 추가예산안 전체를 다룬다는 일은 상식적으로 간단히 납득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다섯 명 특별위원회에 심의의 전권을 맡긴다는 동의안의 채택 때문에 여·야간에 육박전이 일어났던 사태를 생각한다면 야당측의 두 명의 위원이 위원회에 참석치 않을 것은 뻔한 일이라, 여당으로서는 여당의 세 사람만으로 심의의 형식을 갖추자는 본래의 책정이 아니었던 거라고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기는 이러한 사태가 있기 전에 여·야간 열 시간이나 협상을 했다지만 하등 성과를 못 보았다고 하니 여당으로서는 「날치기」도 「변칙 통과」도 하는 수 없지 않느냐고 할는지 모른다.
문제는 여와 야의 어느 편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고 기관인 국회가 힘을 모으기는커녕 서로 불신·항쟁에서 분열로 갈 바를 모른다면 이 나라 이 국민은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유당 때의 24파동 또는 작년 여름 한·일 협정 비준안 심의 때의 국회의 마비상태를 지금 다시 생각게 한다. 이 무슨 불행이랴. 바로 뒤뜰 담 밖 같은 거리에 공산괴뢰군과 총을 맞겨누고 있는 155「마일」의 전선을 가지고있는 또 남쪽으로 주고받는 속심을 헤아리기 어려운 최대의 경쟁자가 우리 문턱에 들이밀리고 있는 이 경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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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에 제2차로 군대를 보낸다는 안건도 20여 시간이나 토론했다고 하는데 이 무슨 하잘 것 없는 싸움을 위한 논전이 있더냐. 국회의원도 방청인도 지치고 지쳐서 코를 골며 쓰러져 자야만 했던 광경이 국회의 의사당의 광경이었다고 하면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 우리의 젊은 장병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국회는 하나의 기관이요, 온 국민의 의사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대표기관임을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금 외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국회의원은 그 어느 당파에 속하거든 먼저 국민 앞에 겸손하여 국사의 공편된 처리를 위하여 그 직책에 충실하여야 할 것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어떤가. 그 눈앞에는 국가의 이익이나 국민의 의사를 살피기보다도 당파의 이익과 개인의 지위와 권세를 노리기에 바쁘다. 여·야의 논쟁은 얼마든지 있어 무방하다. 오히려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논전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견해의 차이를 서로 접근시켜가면서 더 훌륭한 국가 정책을 꾸며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결코 한 당파의 이익이나 권세를 위한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국회의 여당과 야당의 관계는 그야말로 힘과 힘의 대결을 일삼고 있는 광경이다. 다수는 다수라는 힘으로써 소수를 제압하려는 것이고 소수는 비록 소수라고 하나 다수에 대결하려는 공격의 화살을 힘있는데 까지 던지려는 것 같다. 사태는 결코 심상치 않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사태가 어디서 와서 왜 이렇게까지 험악해졌는가? 이는 모두가 명년의 선거를 앞두고 서로 미리부터 세력을 펴자는데 그 뜻이 있는 것은 아닌가.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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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늘의 이 국회를 누가 진정시킬 것인가. 지금 당장에 필요한 것은 싸움의 조정자인 것이다. 원리대로 말한다면 국회의장은 여·야에서 초연한 입장에 있어야 한다. 여당에서도 비록 의장이 여당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의장답게 초연한 자리에 두게 하고 오직 국회의 사명을 위하여 국회를 지키는 국회의 주인이 되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야의 관계를 떠나서 언제나 어떤 경우에도 국회의 공정한 운영을 위하여 그 권위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의장이 감투를 공화당의 다수가 씌우기도 하고 빼앗기도 할 수 있는 것 같은 태도나 또 그로 해서 의장의 지위가 여당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것 같이 생각해서도 아니 될 것이다.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적어도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대통령의 지위에 오른 이상 어디까지나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번영을 위하여 여·야를 막론하고 그 지도자들과 자주 절충하여 국회의원 만한 운영을 도모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국회의장으로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국회의 소란한 싸움을 진정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회를 좌우할 수 있다는 다수의 여당은 그 절대다수의 힘을 단순한 수의 힘만으로 생각지 말고 소수의 야당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신뢰와 존경을 받는 힘이 되어야 할 것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언제나 크면 클수록 책임이 큰 것이다. 【홍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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