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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와 장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회전략사를 훑어볼 때 사사오입이나 날치기는 이제 구구식장총처럼 낡은 무기가 되었다. 반대당의 저지탄환을 뚫고 가볍게 고지를 점령하는 신작전-이른바 「회기장소 변경」이라는 기발한 무기가 탄생된 것이다.
23일 상오2시께 야당의원들은 예결위원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추경예산안을 저지시키기 위해서 농성이라는 극단투쟁으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미사일」시대에 화살을 쏘는 애처로운 사인들의 싸움과 같은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국회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야당에 점령된 회의장을 버리고 여당의원들은 특별회의실에서 승전고를 울렸다.
『몰랐지! 이건 몰랐을 거다』라고 깔깔거리는 어느 「코미디언」의 얼굴 같은 여당 의원 제씨의 표정이 눈앞에 선하다.
회의장소변경이 불법이냐 아니냐하는 것을 따진다는 자체가 쑥스러운 일이기는 하나, 국회전략에 「에포크」를 찍은 이 사건을 그냥 묵과할 수는 없겠다. 왜냐하면 이런 전략이 자꾸 발전되면 「호텔」이나 「사랑방」에서도 국회가 열릴 우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는 물론 법적으로 볼 때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국회와 회의장은 관계없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국회의원이 모인 다리면 어디에서고 국회가 열릴 수 있고, 그것을 중앙청에서 연 전례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세계의 어떤 국회든 회의장이 국회를 상징하는 전당처럼 되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선 영국 의회를 보면 회의장의 의원좌석도 옛날 그대로이다. 전통을 살리기 위해 의원수가 늘어도 회의장소는 옛날 그대로 넓히지 않고 있다. 또 미국에서는 국회의사당을 숫제 「힐」(언덕)이라고 부르는데 그 장소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이다.
국회를 「팔러먼트」라고 부르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팔러」는 말한다. 「먼트」는 집이라는 뜻…. 「말하는 집」이 곧 국회라 한다면 그 「말하는 특정한 집」을 떠나서 국회는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회의 회의장을 바꾼다는 것은 타인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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