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CEO] 독일 지멘스 폰 피러 회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5면

지난해 12월 5일 독일 뮌헨에는 보기 드물게 매서운 추위가 몰아닥쳤다. 독일에서 셋째로 큰 기업인 지멘스는 이날 지난 한해의 사업실적을 공표하는 언론설명회를 가졌다.

설명회가 열린 힐튼호텔 회의장은 독일을 비롯해 유럽의 신문과 방송기자 2백여명의 열띤 취재경쟁으로 후끈 달아 올랐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전날 목표 수익률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지멘스의 신용등급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내렸다. 이날 회견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그래서 더욱 컸다.

언론 감각이 탁월하다고 평가받는 하인리히 폰 피러 회장은 기자회견 시간에 앞서 프레스센터에 도착했다. 그는 안면이 있는 기자들에게 회사 입장을 적극 설명하고 기자회견 때 무슨 질문을 할 것인지를 묻고 다니는 등 사전취재의 순발력도 보여줬다.

-2002년의 사업실적을 평가한다면.

"경영현황에 대해 너무 사탕발림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지난해는 국제정세가 불투명하고 경영 여건도 어려웠다. 격변기 일수록 보수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지멘스 그룹도 부화뇌동하지 않는 보수적인 경영으로 안팎의 도전을 잘 극복했다. 전체 매출은 2001년보다 3% 정도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24%가 늘어난 26억유로에 달했다. 특히 현금 유동성이 두드러지게 좋아졌다.이같은 실적은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정도경영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지속적인 성장이다."

-지난해 설정한 그룹의 경영목표는 달성했나.

"14개 사업부문 가운데 10개 부문의 실적이 전년보다 나아졌다. 구체적으로 보면 발전.의료기.철도 및 파이낸스 부문은 당초 목표를 달성했다. 자동화기기와 오스람(조명기기 생산업체)부문은 거의 경영목표에 도달하는 실적을 올렸다. 송변전.빌딩자동화사업부 및 차량전자부품 부문은 목표치에 근접했다. 그러나 플랜트 및 생산자동화.정보.통신부문은 목표달성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

-2003년의 사업전망은.

"새해 글로벌 경영환경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어려워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구촌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새해 그룹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다. 그러나 매출 감소가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지멘스는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감원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노조의 불만이 많다. 감원은 계속되나.

"2002년 9월 말 기준으로 전체 임직원은 42만6천명이다. 한해 전에 비해 2만4천명이 줄었다. 새해에도 경기가 불투명해 감원 조치가 계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1월 주총에서 '타도(beat) GE'를 내세웠다. 지난 1년간 사업실적을 경쟁업체인 GE와 비교한다면.

"GE와는 스포츠에서처럼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멘스와 GE는 의료기.전구.발전설비.가전을 제외하곤 사업분야가 달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2001년에 6억3백만유로의 적자를 냈던 GE의 본고장 미국에서 지난해엔 8억2천3백만유로의 흑자를 냈다. 앞으로 미국의 경기가 좋아지면 더 큰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지멘스는 의료기.발전설비 등에서 세계 시장 1위를 다투고 있다. 그러나 모바일폰 사업은 현재 노키아.모토로라.삼성에 이어 4위다. 그래서 모토로라에 사업부문을 넘긴다는 설이 독일 증시주변에서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모바일폰 사업은 시장 점유율이 4위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7.8%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며 그룹에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새해에는 시장 점유율을 9%로 높일 계획이다. 모바일폰 사업의 성과는 금전적인 이익보다 그룹 이미지를 보다 젊고 역동적으로 바꿨다는 데 있다. 지멘스는 모토로라와 차세대통신사업(IMT)에서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앞으로도 모바일 폰사업 부문에서 경쟁사와 제휴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새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해 사업전망을 한다면.

"지멘스는 아시아시장 전체가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고 그에 대비하고 있다. 이미 그룹은 이 지역에서 1백억유로어치의 새 주문을 받아놓고 있다. 특히 중국과 호주에서 새로운 송전기술 설비계약을 따내 기쁘다. 그러나 역내 통신사업자들의 투자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통신네트워크 설비사업이 다소 침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에서 가장 중점을 둘 시장은.

"중국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32억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중국에서 벌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업은 상하이(上海)에 건설 중인 초고속열차(Transrapid)부설사업이다."

-최근 북한이 신의주에 경제특구를 설정하고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지멘스가 참여할 용의가 있는가.

"북한의 경제특구에 대해선 보도를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투자를 하기엔 여러가지 걸림돌이 많다. 북한에서의 사업을 지금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

뮌헨(독일)=유권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