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애널리스트 실적 추정은 찍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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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기업실적 전망치는 대개 그 회사가 제공하는 자료를 근거로 한다. 회사 측이 자료를 안 주면 주먹구구 숫자라도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다.”

 최근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로부터 들었던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데 뉴욕 월가의 애널리스트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짐작하게 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널리스트가 내놓는 기업 실적 전망치의 약 절반이 공교롭게도 ‘0’ 또는 ‘5’로 끝난다고 보도했다. 기업 실적이 정교한 산식에 의해 계산된 것이 아니라 대강 어림잡은 숫자일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버클리대 경영대학원의 패트리샤 디초 교수와 홍콩 과학기술대학의 헤이펑 유 교수는 1984년부터 2009년까지 발표된 80만9129건의 연간 실적 전망치를 분석했다. 이중 46.3%의 추정치가 0 또는 5로 끝났다. 단순 확률대로라면 0부터 9까지의 10개 숫자 중 두 개의 숫자가 등장할 확률은 20%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배 이상 자주 쓰인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두 개의 숫자는 다른 숫자보다 기억하기 쉬워 사람이 0과 5에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그러나 애널리스트가 이런 어림수를 쓰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두 교수는 0이나 5로 끝나는 전망치는 애널리스트가 상대적으로 분석을 소홀히 했음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거래량이 많은 종목 또는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의 실적 전망치는 0과5로 끝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즉 투자자의 관심이 높은 기업 전망치는 보다 정치한 숫자로 제시될 확률이 높았다. 두 교수는 또 어림수로 제시되는 전망치는 다른 전망치보다 낙관적인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실적 전망은 투자자가 가려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WSJ는 또 시가총액이 작은 종목을 담당하거나, 담당 종목이 여러 개인 애널리스트일수록 실적 전망치를 어림수로 제시하는 빈도가 높다는 다른 연구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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