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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만 봐도 집 나온 아이 알지요 가출해 본 16명의 ‘노란버스 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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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1일 서울 영등포역 광장에서 ‘가출 청소년 쉼터’의 청소년들이 가출한 또래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쉼터로 안내하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달에만 80여 명의 청소년이 도움을 받았다. [김도훈 기자]

경기도 시흥의 가출 청소년 쉼터 ‘아침청소년의집’에서 생활하는 이슬기(19·가명)양은 임신 4주차 미혼모다. 중학교 2학년 때 집을 나와 5년간 홀로 생활했지만 임신 후엔 일을 할 수 없어 쉼터로 돌아왔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양도 가출한 ‘첫날’을 잊지 못한다.

 “가출하기 전엔 라면만 먹고도 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편의점에서 밤을 새운 뒤에야 춥고 배고픈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았어요.”

 이양을 비롯한 경기도 안산·시흥 지역 가출 청소년 16명은 이달부터 특별한 봉사를 위해 서울 영등포역 광장을 찾았다. 주 3회 오후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방황하는 또래 가출 청소년을 찾아내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쉼터로 안내하는 역할이다. 2년 전 가출했던 김주아(19·가명)양은 “가출 첫날 잘 곳이 없어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갔다”며 “친구들에게는 춥고 떨리는 기억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청소년 지원단체인 ‘위드프랜즈(with friends)’가 공안과 의원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는 봉사활동이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밤, 눈보라가 치는 매서운 날씨에 청소년 봉사자 16명이 영등포 광장에 주차된 노란 버스에서 내려 활동을 시작했다. 노란 버스에는 간이쉼터와 상담실이 마련돼 있다. 처음엔 인근 경찰도 “여기에 아이들이 모이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담골(담배를 피울 수 있는 으슥한 골목을 지칭하는 은어)’을 샅샅이 뒤지며 또래들을 찾았다.

김소윤(19·가명)양은 “물가가 싸서 영등포나 신림동에 가출 청소년이 많이 모인다”며 “겉으로 말끔해 보이는 친구들도 우리가 보면 가출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달 여섯 차례 활동을 통해 80여 명의 청소년이 도움을 받았다.

21일 찾아온 김기철(15·가명)군은 이날 난생처음 집을 나왔다. 김군은 “아버지가 이혼한 뒤부턴 술을 마시고 ‘공부만 하라’고 잔소리해 집을 나왔다”고 했다. 이틀 후 쉼터를 찾은 김군의 아버지(47)는 “사업이 어려워진 후 얘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송정근(51) 목사는 김군 아버지에게 “이혼한 아버지가 혼자서 자녀를 키우기 어려운 세상이다. 힘들면 주변 돌봄기관을 충분히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은 2009년 1만5114명에서 지난해 2만434명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지원하는 청소년 쉼터는 92곳(정원 1000여 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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