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사활(死活)-체면을 내던진 진흙탕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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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9보(113~124)=바둑에서 ‘공격’과 ‘살상행위’는 전혀 다릅니다. 공격의 목적은 요소를 선점한다거나 상대방 진로를 막아 옆길로 돌아가게 만든다거나 중앙 쪽의 주도권을 장악한다거나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요. 공격이란 상대방 돌을 쫓으며 부수적 이득을 노리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격할 때라도 ‘폼’이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바둑도 폼이 매우 중요하지요.

 지금 백은 공격이 아니라 포위(116)와 섬멸(118)의 살상행위, 즉 살(殺)의 바둑을 두고 있는데요. 이때는 폼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뛰어든 흑을 지금 당장 반드시 잡아야 하기에 체면은 필요 없다는 거지요. 살아야 하는 흑의 입장은 더 처절합니다. 흑은 오직 ‘두 집’이 필요합니다. 악수나 정수가 따로 없지요. 진흙탕 싸움이든 뭐든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수순을 보면 쌍방의 돌이 조금은 체면 없이 갈라지고 찢어지는 모습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같은 진흙탕 싸움을 싫어하면 고수는 될 수 있을지언정 승부사는 될 수 없지요. 그게 바둑의 두 얼굴입니다.

 116으로 포위했지만 백의 포위망에도 약간의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참고도’ 흑1로 나가 백을 차단하는 것인데요, 백6에 이르러 A와 B가 맞보기라서 당장은 수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120도 이 맛에 대비한 수입니다. 그러나 미위팅 3단도 이 맛을 노리며 119로 붙여 교란 전술로 나옵니다. 122와 124는 최강의 응수인데요, ‘대마 저격수’ 최철한 9단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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