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리후생비도 임금에 해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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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고용노동부의 한 지방고용센터에서 11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이모씨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침에 따라 2008년 무기계약직 근로자로 전환됐다. 이씨는 사실상의 정규직이 된 만큼 해고 걱정도 사라지고, 월급과 각종 수당도 오를 것이란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첫 월급명세표를 받고 실망했다. 고용노동부가 무기계약직의 통상임금을 정하면서 월 12만원가량의 복리후생비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통상임금의 일정 비율로 지급되는 초과근무수당이나 연월차 수당 등이 줄줄이 깎였다. 이씨는 고용노동부에 시정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이씨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동료 143명과 함께 지난해 10월 소송을 냈다.

 소송 과정에서 양측은 복리후생비의 성격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다.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에는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돈은 모두 포함된다. 민간 기업들은 복리후생비를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공무원들은 단체협약을 통해 기본급을 높이는 대신 복리후생비는 없애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임금체계가 다른 비정규직들에게는 정규직과의 소득격차 보전을 위해 12만원가량을 ‘복리후생비’라는 명목으로 지급했다.

 원고 측은 “이 돈이 정기적으로 지급된 만큼 급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고용노동부 측은 “각종 복리혜택을 보장받지 못하는 무기계약직을 위해 근로 제공과 상관없이 지급한 돈이라 통상임금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97단독 김갑석 판사는 “이 사건 복리후생비는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임금이므로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5일 밝혔다. 김 판사는 이어 “원고들이 2008년 11월부터 받지 못한 수당 차액 6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이 판결에 따라 고용노동부가 통상임금 산정 지침을 바꾸게 되면 올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2만3000여 명을 비롯해 총 9만7000여 명의 수당이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원엽 기자

◆무기계약직(無期契約職)=급여는 정규직보다 적지만 만 57세까지 정년을 보장받는 고용 형태. 정부는 2007년 제정된 ‘기간제(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2008년부터 중앙정부와 지자체·정부투자기관·공립학교 등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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