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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솔로대첩은 실망대첩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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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강일구]

‘솔로(solo)’는 혼자서 하는 독주(獨奏)나 독창(獨唱)을 가리키는 음악용어다. 한국에서는 짝이 없는 미혼남녀를 뜻하는 말로 더 많이 쓰인다. ‘미팅(meeting)’이 남녀 간의 짝짓기 모임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는 것과 비슷하다. 외래어를 필요에 맞게 현지화하는 한국인들의 조어 능력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대체와 변용의 단계를 넘어 창조와 혼성의 단계까지 왔다.

 친밀한 신체 접촉을 가리키는 ‘스킨십(skinship)’은 영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창조적 콩글리시의 개가다. 하이브리드 시대를 맞아 요즘은 영어와 한자를 섞어 만든 혼성 신조어가 대세다. 영어 단어 ‘멘털(mental)’에 무너진다는 뜻의 한자 ‘붕(崩)’을 결합해 만든 ‘멘붕’은 2012년 ‘올해의 단어’로 손색이 없다.

 살수대첩도, 귀주대첩도 아닌 ‘솔로대첩’이란다. 짝 없는 미혼남녀 무리가 한자리에 모여 마음에 맞는 짝을 찾을 수 있다면 솔로들에게 그 이상의 대단한 승리가 어디 있느냐는 거다. 재기발랄이다. 영어로 뭐라고 할지 궁금해 외신을 찾아보니 ‘mass blind date event’란다. ‘flash-mob blind date’라고 한 곳도 있다. 뜻만 있지 맛이 없다.

 성탄절 이브에 서울 등 대도시에서 벌어진 솔로대첩이 별 전과(戰果)를 못 올리고 막을 내렸다. 패잔병만 양산한 실망대첩이라는 말도 들린다. 광장에서 짝을 찾는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남녀 불균형이 워낙 심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짝짓기의 속성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눈빛과 몸짓을 주고받는 은밀한 교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짝짓기는 원래 사적(私的)일 수밖에 없다. 공적(公的)인 광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솔로대첩은 SNS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놀이문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재미 삼아 하는 젊은이들의 놀이에 정색하고 달려든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엉만튀(엉덩이 만지고 튀기)’나 ‘가만튀(가슴 만지고 튀기)’ 같은 불상사를 우려해 경찰력까지 투입했지만 사고는 없었다. 고발 운운한 어른들만 머쓱해졌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제임스 프레스콧은 400여 개 사회의 문화를 비교분석하는 연구를 통해 신체 접촉을 통한 애정 표현이 발달한 문화일수록 폭력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결론을 내렸다. 부모와 자식, 남녀 간의 스킨십을 권장하는 사회에서는 절도나 광신적인 종교 조직을 찾기 어렵고, 폭력 행위도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짝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조물주가 인간의 유전자에 그렇게 새겨놓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인류는 벌써 멸종했을 것이다. 짝짓기의 유혹과 달콤함으로 종(種)은 대를 잇고, 번성한다. 대한민국의 평안(平安)과 영속을 위해서도 짝을 찾는 솔로들의 행진은 계속돼야 한다.

글=배명복 기자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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