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태평양 4739km … 러시아, 오일로드 뚫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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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총 길이 4739㎞에 이르는 러시아의 ‘오일 로드’가 7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됐다. ‘동시베리아-태평양(ESPO) 송유관’으로 불리는 러시아 원유 수송 파이프라인이다. 중동부 시베리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날라다 일본·중국·한국·미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로 이어주는 ‘원유 고속도로’다. ‘강력한 경제=강력한 러시아’를 표방하는 3기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본격 개막식을 연 셈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러시아 송유관 건설회사 트란스네프트가 25일 극동 하바롭스크에서 ESPO 송유관의 2단계 구간 완공식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이 구간은 극동 아무르주(州) 스코보로디노에서 태평양 연안 나홋카 인근의 코즈미노항(연해주)까지 2045㎞ 길이다. 앞서 2009년 중부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주의 타이셰트에서 아무르주의 스코보로디노를 잇는 2694㎞ 길이의 1단계 구간이 뚫렸다. 1단계 구간은 시베리아 원유 연 3000만t을 운송해왔다. 이 중 절반은 지선을 통해 중국으로 수출했고 나머지는 대륙횡단철도(TSR)를 이용해 코즈미노항까지 운반한 뒤 아태 국가로 수출해왔다.  

 트란스네프트에 따르면 코즈미노항 원유 수출량의 35%를 미국이 가져가게 된다. 일본이 30%, 중국이 28%를 가져가고 나머지는 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로 수출된다.

 2단계 구간 완성은 타이셰트에서 코즈미노항까지 단번에 원유 수송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ESPO의 수송 능력을 점차 5000만t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완공식에 보낸 영상메시지에서 “ESPO 2단계 구간 완공은 러시아 경제에서 중요한 사건”이라며 “극동의 인프라가 가진 가능성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급성장하는 아태 에너지시장을 본격 공략할 채비를 마쳤다. 러시아는 그간 유럽 쪽으로 원유를 수출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유럽 비중을 줄여간다는 계획이다. 로이터통신은 내년 1분기 발트해 우스트 루가 항구에서만 러시아의 대유럽 원유 수출량이 20%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아태 국가 수출량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미 중국에는 ESPO 1단계 구간 완성 후 하루 30만 배럴을 수출하고 있다. 러시아는 2020년까지 시베리아의 원유 생산량을 연 4500만t(하루 90만 배럴)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재는 연 1500만t가량 된다.

 러시아의 ESPO 프로젝트는 극동러시아 지역을 ‘에너지 클러스터’로 육성하는 장기개발 계획의 일환이다. 이 지역의 천연자원을 활용해 석유·가스화학 등 기간산업 분야를 집중 육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푸틴 3기의 경제정책과 맞물려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지난 집권 동안(2000~2008년) 에너지 부문 통제를 강화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러시아는 지난해 세계 산유량의 12.8%를 차지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최대 산유국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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