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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중2·중3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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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기도에 사는 중학교 2년생 박모(13)양은 9월 초 경기도 수원의 한 청소년 상담센터를 찾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박양은 가정 불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자살까지 생각하다 이날 용기를 내서 센터를 찾았다. 박양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부모였다. 40대 초반의 부모는 박양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경제적인 문제, 집안일 등 다양한 이유로 싸웠다. 밥 먹다가 싸웠고 길을 가다가 싸웠다. 부부싸움의 화살이 박양에게로 돌아왔다. 엄마는 “공부를 왜 안 하느냐.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어른이 돼서 나 같이 살래”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엄마는 딸이 잘돼서 아빠에게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암묵적인 압박을 가했다. 5년 동안 박양은 혼란이 심화됐다. 부모가 싸우다 사이가 좋아지는 것을 볼 때는 배신감과 분노·억울함을 느꼈다. 상담사는 “이런 것들이 쌓여 불안과 우울로 발전했고 자살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청소년 4명 중 1명꼴로 최근 1년간 박양처럼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5~6월 전국 16개 시·도 300여 개 초·중·고교 학생 874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이 중에서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청소년은 2043명(23.4%)이었다. 이 가운데 294명(3.4%)은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

 자살을 생각한 2043명 중 초등생은 533명, 고교생은 635명인 데 비해 중학생이 875명으로 월등히 많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최인재 연구위원은 “청소년기의 특성은 충동적·즉각적인데 초등학생은 아직 이런 특성이 발현되기 전이고 고교생은 성장하면서 이런 것을 관리할 능력이 어느 정도 생기는데 중학생은 그렇지 못하다”며 “학업 스트레스가 중학교부터 시작되고 왕따(집단따돌림) 같은 게 증가하면서 자살까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 위원은 ‘중2병’ ‘중3병’이라고 불렀다.

 무엇 때문에 청소년들이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할까. 학업·진로 때문이라고 답한 학생이 36.7%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가정불화가 23.7%를 차지한다. 경기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강유임 상담팀장은 “부부싸움 등 가정불화 심화→아이의 눈치·불안 상승, 대처능력 저하→집이나 학교에서 아이를 돌보지 못함→학업 포기→탈선, 또래관계 단절→절망→자살시도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자살을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학교폭력(7.6%)이다. 최근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이것이 자살의 큰 원인일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보다는 학업스트레스와 가정불화가 아이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서울 강남의 유명 사립초등학교에서 흉기를 휘두른 김모(18)군도 학교 중퇴 전 흉기로 자해하거나 옥상에 올라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김군은 경찰에서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우울증이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인재 연구위원은 “부부싸움만이 가정 불화가 아니다. 부모와 아이의 의사소통이 안 되고 성적 얘기만 하다 아이가 반항하면 폭행하고 이런 것들도 문제”라며 “청소년기의 특성이 뭔지, 어떻게 대화하고 문제를 풀지 이런 걸 모르는 부모가 많다”며 “학교에 학부모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부모를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유임 팀장은 “이혼 가정이 문제가 아니라 이혼한 부모라도 아이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소통을 잘하는지가 중요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부모교육 관련 서적을 읽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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