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도 화해 손짓 … 극우 발톱 숨기는 아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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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극우 정치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가 한국·중국과의 외교에서 안전운전을 하고 있다. 26일 총리 취임을 앞둔 그가 한국에 이어 중국에 대해서도 연거푸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 2월 22일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의 날’ 행사의 정부 주최 유보와 특사 파견 방침을 전했던 아베는 22일 중국과 갈등 중인 센카쿠(尖閣)열도와 관련된 총선 공약의 유보를 시사했다.

 ‘센카쿠를 지키기 위해 공무원 상주를 검토하겠다’는 공약에 대해 그는 이날 “검토한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다. 검토한다는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면서도 “일·중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전략적 호혜 관계의 원점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공무원 상주를 비롯한 센카쿠 실효 지배 강화방안들을 단지 ‘검토’하는 데 그칠 것 같다”며 “중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발언에 배어 있다”고 전했다. 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은 아예 “아베 총재가 공약을 유보했다”고 보도했다. 아베는 자민당 내 거물인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부총재를 내년 1월께 중국에 특사로 파견할 예정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태도변화가 감지된다. 요미우리는 “아베 총재가 외교에서 안전운행을 하고 있는 만큼 내년 4월 춘계대제 때는 참배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그는 9월 말 자민당 총재 경선 때부터 줄곧 “지난번 총리 재직 때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밝혀왔으나 최근엔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종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담화 대신 새 담화를 내겠다’던 공약도 당분간 보류될 가능성이 크다. 아베 본인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고노담화 수정은 그렇게 서두를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의 지혜를 빌려가면서 논의를 진행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총리 취임만 하면 야스쿠니에 달려가고 고노담화를 당장에라도 뜯어고칠 것 같던 태도가 일단 누그러졌다.

 극우색 짙은 아베가 일단 발톱을 숨기고 한국·중국과의 급격한 관계악화를 피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셈이다.

 ‘동북아를 대립으로 몰아가는 극우 싸움꾼’이란 멍에를 뒤집어쓰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한·일 간, 중·일 간 대립격화를 우려하는 미국 정부의 입장이 ‘미·일 동맹 강화론자’인 아베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도쿄신문은 “아베 총재는 줄곧 ‘자민당 공약엔 실현될 수 있는 내용만 쓰여 있다’고 강조해온 만큼 실제로 공약을 실천하려 들면 한국·중국과의 관계악화는 피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베 총재가 그동안 ‘매파적’인 주장을 통해 자민당 내 구심력을 높여왔다는 점에서 만약 요즘과 같은 유화적인 자세가 계속된다면 당내에서 불만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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